신희지, 『나답게 산다』, 꿈의지도, 2019.
저자는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에서 고알피엠 여사로 등장한 바 있다. 현재까지 행복학교 교무처장으로서 저자 스스로 밝혔듯이 노는 판을 만들며 재미내서 일하고 있는 줄 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문화예술인들 스무 명을 만나 나답게 사는 얘길 듣고 소개하고 있는데 전직 기자나 인터뷰어의 시선이라기보다는 각각의 문화예술인이 걸은 길을 함께 걷고 이해하며 지지하는 동행자의 시선을 보여준다. 문화예술가는 그답게 행동하고 말을 할 테지만 저자는 또 저자답게 그들이 미처 하지 못한 말이나 속생각을 따옴표 바깥의 문장에서 살아나게 하는 필력을 갖고 있다. 물론, 필력 이전에 문화예술가에 대한 애정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몇몇 장면을 보자.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몸이 아파버린 류근 시인을 두고, “아마도 돈을 벌면 다시 시인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그를 짓누른 건지도 모른다”고 했다. “지금 그는 다행히 유리구두를 벗고 제자리를 찾았다”고 했으니 신데렐라의 꿈을 가진 사람은 다행과 불행의 기준이 혼란스럽겠다. 저자가 보는 류근 시인은 “상처에 대한 공감을 지니기 위하여 스스로를 상처로 내모는 시인”으로 특정된다.
이준익 감독과 그의 영화를 소개하면서 “그는 가장 이상적인 자본주의 사회는 비정규직이 행복한 사회라고 말한다. 미래사회는 인간의 고용관계가 보다 수평적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자본의 수평이 아니라 문화적인 수평을 이뤄야 한다. 자본은 동일하게 나누어 가질 수 없다. 그러나 문화는 나눌 수 있다(...)문화수평주의. 그래서 비정규직도, 저소득층도 문화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은 삶의 만족도를 높게 만드는 최선의 방법이다”라고 전한다. 자본의 수평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지만 수평을 지향하는 마음은 감독과 저자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위만 쳐다보는 욕망구조를 조장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과 비교해서 상대적 박탈감을 갖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에도 공감이 간다.
기타리스트 김광석 편에선 최고의 연주자가 되기 위한 방법을 선명하게 제시한다. “그는 세 시간만 연주를 하지 않아도 자기 손가락이 굳어버리는 것 같다. 밥을 먹을 때나 잘 때나 차를 탈 때나 누군가를 만날 때에도 그의 옆에는 늘 기타가 있다. 기타와 그는 한 몸이다. 분리될 수 없는 존재다. 기타와 하나가 되어야 가벼운 음악이 나온다고 그는 믿는다”라고 했다. 각각의 분야에서 예술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선 별 뾰족한 수단이 없는 것이다. “살아 있는 전설이,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지금도 어디선가 연주를 하고 있다”고 했듯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만 한다.
용이 되는 법을 물었을 때 민속학자 조용헌은 많이 돌아다니고, 전문가를 만나 얘기 듣고,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답한다. 그러면서도 노력을 주의하란다. “노력은 우리를 몰아치는 말이다. 다그치고 윽박지르며 더 빨리, 더 열심히 달리라고 몰아붙이는 세상. 그러나 노력해도 안 되는 게 분명히 있다. 운명적으로 안 되는 것도 있고, 사회가 공정하지 않아서 안 될 수도 있겠다. 어쨌든 노력이 배신당했을 때 사람들은 마음을 다친다. 그러나 노력은 실은 욕심의 또 다른 말이다”라고 덧붙였으니, 세상에 용으로 사는 것도 폼 나는 일이겠지만 그것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도 그 이상으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물론 어느 쪽 길이든 쉬워 보이진 않는다..
결국, 나답게 사는 건 뭘까. 답이 있다기보단 스스로 한 번 더 질문을 던져보게끔 하는 시간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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