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강을 버린 세상에서 살아가기

톰소여와허크 2020. 1. 20. 15:39



 

황규관, 강을 버린 세계에서 살아가기, 한티재, 2015.

 

 

- 시집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2011), 정오가 온다(2015)를 내기도 했던 시인의 산문집이다. 시인은 스피노자와 니체를 사유하며 현실을 읽는다. 자신을 파문한 공동체를 스스로 파문한 스피노자의 전기를 들어, “자신이 속한 세계의 틀을 스스로 거부하는 생명의 약동을 틀 지우지 않는 게 곧 자유며 자유에는 고통이 따른다고 부언한다. 이런 인식은 또한 그가 천착했던 김수영 시인(리얼리스트 김수영2018)을 닮아 있다.

힘 그 자체는 도덕 이전의 것으로 파괴와 생산, 위험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 뒤 새로움이란 것은 내면의 힘으로 주어진 현실을 전복하는 상상력에 발원할 터이고, 그 상상력은 주어진 가치를 물구나무 세운 괴물을 만들어 제출하는 힘의 다름 이름일 것이다라고도 했다. 여기서 괴물이란 표현이 생경해 보이긴 하지만 익숙한 것을 뒤집는 동력을 적실하게 표현한 것이란 생각도 든다. 책 말미엔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예노동이라는 괴물에 맞서면서 동시에 삶의 시간을 어떻게 노래할 것인가가 과제라는 인식을 보였는데 이때의 괴물은 앞의 괴물과 다르게 자본주의가 드러난 꼴이다. 그러니 자본주의 괴물에 맞서기 위해서는 또 다른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생긴다. 시인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나 혼자 발견한 재미에 공감해줄 줄 안다.

시인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해고 걱정 없는 고용 안정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노동의 자본으로부터의 탈주는 단지 비정규직 문제나 정리해고 문제로는 해결이 난망해 보인다. 회색 노동의 시간을 녹색 노동의 시간으로 혹은 노예노동을 생명노동으로 변화시키기가 좀 더 근원적인 길임을 조심스레 또 애써 강조한다. 자연과 인간을 무릎 꿇리는 자본주의 문명에 맞서, “지금 문명을 바꾸는 운동과 삶을 예술화하는 프로젝트가, 그리고 자연과 생명에 활짝 열린 감수성의 회복을 위한 작디작은 실천들이 필요하며 연대와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해서, 이전과 다른 방식을 고민하며 오래된 싸움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 시인의 입장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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