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석, 『경계에서의 글쓰기』, 행성B, 2020.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인기 칼럼을 책으로 엮었다. 오민석 작가가 친절하게 페북에도 연재해주었기에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정돈된 논리와 깊이 있는 시각을 얼마쯤 짐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를 재차 확인하고 음미하는 시간 역시, 새로운 앎과 재미가 더해지는 걸 느낀다.
‘불일치의 정치학을 위하여’에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자기 정치의 활력을 스스로 죽이는 일임을 말하며, 무분별한 색깔론이나 경직된 이념을 버리고 정책으로 불일치를 만들 것을 권장한다. ‘낡은 신화의 베개에서 코를 고는 사람들’에선 재벌이라서, 대통이라서, 남성이라서, 윗사람이라서 자연스레 누리던 특권이 더 이상 존중받지 않는 시대임을 분명히 한다. 종종 내가 코를 고는 소리를 내가 듣고 놀라는 경험이 있기에, 처음 이 칼럼 제목을 접했을 때 스스로 코를 잡고 자신을 돌아봐야 할 사람들이 많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도 당신도 그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사랑하기의 어려움’에선 부모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하고 전기충격요법에 시달렸던 코엘료(『연금술사』의 저자)를 인용하며, 타자를 전유하고 자기화하는 것을 오히려 ‘사랑’이라고 명명하는 것에 경종을 울린다. “사랑은 능동적 지배가 아니라, 타자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타자에 대한 ‘환대’가 생겨난다. 그런 이 엎드림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래서 사랑은 궁극적으로 감성이 아니라 의지이고 고통이다”라고 밝힌다.
작가의 글에서 ‘환대’라는 표현은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서 나왔을 것이다. 작가의 다른 글에서 「방문객」을 인용한 걸 본 기억이 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머어마한 일이다”라는 시구로 시작되는 시에서 ‘사람’ 대신 ‘책’을 넣어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든다.
책 제목을 ‘경계에서의 글쓰기’로 뽑은 것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에 기대고 있다. 모든 체제나 특권에 의문을 제기하고, 경계 밖으로 스스로를 추방시키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라는 내용을 높게 산 것이다. 오민석 작가의 글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중심을 자처하지 않고 경계 밖으로 자신을 몰면서 중심과 경계를 꾸준히 탐색하며 불일치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에서 나오는 것일 테다. 작가의 ‘환대’를 바란다면 ‘책’을 펴는 일 말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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