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규, 『생태평화를 찾아 마을로 간 신부』, 학이사, 2014.
- 정홍규 신부는 가톨릭이 가톨릭 안에 갇히지 않고 그 신앙과 역사가 마을로 우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지역 성당에 있을 땐 담장 허물기 사업에 나섰고, 도농직거래 장터를 운영하는 일을 주도했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또 성당과 마을을 연결하며 주변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자 한 것이다.
경쟁 프레임이 작용하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위해, 산자연학교를 운영한 경험도 소개한다. 신부답지 않게 학생에게 회초리를 대고 자책하는 시간을 겪으며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아이들과 나 자신의 취약한 점을 이야기하고 약점을 서로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며 좋아진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서로의 약점을 이야기하길 바란다. 그러면서 서로 다시 연결되고 소속되고 공감되는 순간 그 자체가 힐링이다.”라고.
대안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상위 학교로 또 사회로 편입되어갈 때 경쟁 구조는 다시 학생을 옥죄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요람에서 무덤에까지 경쟁모드를 장치해 두면서 무한정한 탐욕을 부추기는 불평등의 승자독식의 사회구조를 변혁하지 않는다면 대학교육의 혁신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고 하면서도 어떻게 살 건가에 대한 고민은 놓지 않는다. 대학이 수익 창출을 외부에 계약하는 것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 “교수와 교직원 그리고 학생 심지어 지역주민까지 협동하여 지역커뮤니티를 통한 지역자본주의를 창조한다면 이것이 대학에 있어서의 소리 없는 경제혁명이며 생태계 순환을 위한 장치라고 본다”고 했다.
신부는 숲 파괴, 토양 유실, 기후 변화, 핵발전소, 식량 부족 등 지구공동체를 위협하는 일련의 사태 앞에 그 타개책으로 토마스 베리를 즐겨 인용하며 우주적 사고와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글 서두와 말미는 대구가톨릭대 내부에서 발견된 스트로마톨라이트란 돌 이야기다. 수억 년은 너끈히 이어온 박테리아 화석을 보며, 돌의 꿈이 지속성인 것을 생각하고 지금을 살아가는 인간의 꿈을 되묻는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사실, 첫 번째 질문을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로 살짝 고치면, 폴 고갱의 그림(1898) 제목이기도 하다. 물론, 고갱 이전에도 이후에도 늘 던져왔던 질문일 텐데 답할 무엇도 갖고 있지 않음을 깨달을 뿐이다. 질문을 지속적으로 품는 것이 유일한 답일 듯도 하다. (이동훈)
'감상글(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0) | 2020.10.18 |
---|---|
<에세이> 길을 잃는 것이 길을 찾는 길이다 (0) | 2020.10.11 |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0) | 2020.10.04 |
<에세이> 경계에서의 글쓰기 (0) | 2020.09.20 |
<에세이> 풍류세시기 (0) | 2020.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