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톰소여와허크 2020. 10. 4. 12:05

요나스 요한슨(임호경 역),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열린책들, 2013.

 

 

- 톰 소여나 허크, 보물섬의 짐 호키슨 등 십대 소년의 모험에 푹 빠져 지내던 시절이 있었고,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 도둑질하는 루팡, 도둑을 잡는 홈즈처럼 어른들의 모험에도 들떠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100세 노인의 모험은 뜻밖이다.

100세 생일을 앞두고 양로원 탈출에 성공한 알란이 돈이 든 트렁크를 훔치기로 작정하면서 모험은 시작된다. 갱단의 추적과 추적을 따돌리는 활극 속에 알란의 지난 시절이 중간중간 이어지는 이야기 구조다.

알란은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야기를 아주 싫어한다. 좌파와 우파 사이, “세상을 이전과 정반대로 바꾸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이면엔 자신의 신념(다른 쪽에서 보면 완고하거나 경직된 생각)을 조금도 풀지 않고 대립과 반목과 전쟁으로 일관한 풍조가 한몫했을 것이다. 또한 테헤란의 비밀경찰에게 전도하려는 순진한 신부가 그 비밀경찰의 총에 어이없이 죽게 되는 장면은 종교에 대한 풍자로 읽을 수도 있겠다.

정치를 싫어하던 알란이 인생의 중요한 국면에 마주했던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트루먼, 스탈린, 마오쩌둥과 마오쩌둥의 부인, 김일성과 김일성의 어린 아들 등 정치적 인물이다. 다소 황당무계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작가는 <진실만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없단다>는 본인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미리 인용해두고 있다.

김일성 가계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언급한 아래 대목은 위안부의 존재와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어 주목이 된다.

벌써 수십 년 동안 일본인들은 식민지 사람들에게 강압과 전횡을 휘둘러 왔다. 수십만의 여인들과 소녀들이 붙잡혀 가 천황 군대의 위안부가 되었으며 남자들은 강제로 징집되어 천황을 위해 싸워야 했다. 또 이 천황은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등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말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한국의 입장을 존중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일본이나 해외에서도 똑같이 번역되었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소설에서 반복되어 인용된 구절은 알란의 어머니 말씀이다.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에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는 말을 남겼으니 지나치게 상심하거나 걱정하는 일이 사는 데 도움되지 않는다는 말로 들린다. 상심과 걱정은 모험의 동력을 앗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알란은 100세에 첫 결혼을 한다. 만약, 100세에 이를 수 있다면, 창문 넘을 수 있는 근력과 마음도 있기를 바라본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