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길을 잃는 것이 길을 찾는 길이다

톰소여와허크 2020. 10. 11. 00:12

박주하, 길을 잃는 것이 길을 찾는 길이다, 행복한책읽기, 2020.

 

 

- 중고등학교 시절, ·하교용이나 신문 배달용으로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타고 멀리 나갈 일은 드물었다. 기껏해야 동네나 시장, 도서관 다닐 때 이용했을 것이지만 자전거는 퍽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양손을 놓고도 몸을 부리면서 방향을 바꾸는 재주라든지 앞바퀴를 들고 낮은 턱을 넘는 기술에도 재미를 내곤 했다.

그러다가 김훈의 자전거 여행(2000)을 읽고, 자전거가 낯선 지방 먼 거리를 여행하는 데도 쓸모가 있음을 알았다. 김훈은 갈 수 없는 모든 길 앞에서 새 바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했다. 자전거 여행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슴에 품고 몸을 써서 바퀴를 굴려 그 길을 느끼는 일이다.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고, 숨은 역사 문화를 알고, 사람의 체취를 받아들이는 일은 분명 설레는 일이다.

김훈의 자전거는 국내를 달렸지만, 저자 박주하의 자전거는 중앙아시아, 동유럽 등 해외 오지를 주로 다녔다. 저자는 20대 초반에 서울과 부산까지 자전거로 34일 종주한 적이 있다고 하니 이미 그때부터 자전거와 함께 모험을 살 마음의 씨를 심었을 걸로 보인다. 그 마음의 씨는 직장생활을 그만둔 인생 중후반에 발아해서 지구 이편저편을 자전거로 누비게 되었을 것이다. 코로나로 해외의 길을 나서지 못하는 지금엔 고양시 교외를 오가며 저자의 자전거는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자전거 여행의 가이드북이라 할 만한 자전거를 타고 세상을 만나다(2019)를 출간한 바 있다. 이번에 출간한 길을 잃는 것이 길을 찾는 길이다는 사진을 곁들인 에세이로 언어를 매만지고 문장을 단련한 흔적이 뚜렷하다. 불필요한 말을 아끼고 한 말도 줄이면서 일면 디카시에 가까운 에세이가 되었다.

몬테네그로 古都 코토르에서 찍은 사진을 배경으로, 이렇게 적는다.

 

잘 짜여진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방황 없는, 방랑 없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어디서 멈춰야 할지 주저할 때

비로소 여행은 시작된다

 

세상을 모르고, 내일을 모르고, 정답을 모르는데 지금 해야 할 당위나 철칙을 고집하는 건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다. 오히려 고민하고 주저하는 게 인간적이란 생각도 든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괴테의 말처럼 방황과 방랑은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진지한 애씀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 같은 지역의 사진 한 장 아래엔 이렇게도 적는다.

 

시간에 쫓기지 아니하고

여유롭게 천천히 달리다 보니

비로소 하늘의 구름이 달리 보이기 시작하고

비로소 땅 위의 풀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하더라.

이제는 한 템포 늦춰가면서

쌓아가기로 작정했다

 

요즘 따라 구름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지켜보는 게 좋으니 저자의 생각에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세상 궁금한 병아리가 땅 한번 쪼고 하늘 한번 쳐다보듯이 풀을 한참 보고, 구름을 내내 보는 일은 너무 화평해서 방랑도 아니고 모험도 아닌 듯하다. 하지만 바쁨과 속도에 매몰되어 여유와 모험을 잃고 사는 주변을 돌아볼 것 같으면 결국 작정하고 여유를 내야 할 이유가 있다.

내 자전거는 해외에서 달릴 일은 없겠지만 오일장을 오가는 수단이 되고 가끔씩 시장 삼거리 주막 앞에 세워져서 주인 대신 구름 구경하고 있으면 좋을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