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의 숲 / 최성규
나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우리가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세상의 중심에만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배운다
광풍이 불고 폭우가 치던 지난밤
호흡이 붙어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바깥에서 안으로 숨어들기 바쁜 그 시간에도
나무껍데기는
온몸으로 움트는 여린 속살을 끌어안고
밤새도록 지켜내고 있었다
중심에 사는 것들이
오만함조차 당당한 척 똬리를 틀 때에도
나무껍데기는 그들을 위해
찢어지고 갈라진 생채기 틈으로
뜨거운 햇살들을 나지막이 받아들였다
햇살도 원래는
광물의 거칠고 요란한 덩어리 같았으나
나무의 껍데기를 관통하는 순간
가시처럼 뾰족한 성질을 버리고
연둣빛 속살 같은 그루터기를 허락했다
중심에 저항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스스로가 낮아져도 좋다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다짐 때문에
추운 겨울조차 즐거운 기다림으로 우리는 날마다
거대한 숲의 전령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멸치는 죽어서도 떼 지어 산다』, 시와에세이, 2020.
감상 – 산에 가면 신갈, 졸참, 굴참 등 참나무 형제들을 자주 만난다. 그 중에 굴참나무에 눈이 더 많이 가는 건 나무껍질 때문이다. 세로로 비틀리면서 몸에 새겨진 굴곡이 단단하고 깊어서 인생의 간난신고를 악착스레 지나온 모습이 그와 같을 거란 인상을 받는다. 물박달나무 껍질을 만나도 혀 차는 소릴 내게 된다. 물박달나무 줄기는 누더기 성자와 같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껍질 조각의 상당 부분은 안이 들떠서 작은 바람에도 몸을 떤다.
굴참나무든 물박달나무든 또 다른 나무든 다들 제각각의 나무껍질을 갖고 있지만 나무의 안을 보호하려는 역할은 다르지 않다. 시인은 나무속 대신 ‘중심’이란 표현을 쓰고, 나무껍질 대신 ‘껍데기’란 표현을 쓴다. 이른바 잘나가는 게 “중심”이라면 그 원심력의 바깥에 존재하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곧 “껍데기”란 것이다.
이 껍데기는 외부에서 오는 것을 일선에서 견디는 역할도 하고, 그것을 안으로 여과시켜서 맞춤한 성질이 되게끔 만들기도 한다. 중심을 살리고 기꺼이 배경으로 남는 것은 껍데기의 덕이라 할 만하다. 그런 껍데기로 인해 숲은 건강성을 잃지 않는다. 시인은 껍데기가 중심에 저항하지 않고, 중심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심을 따르며, 중심을 놓지 않는 껍데기는 이미 자기 자신이 중심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거드는 마음이, 굴참나무 패인 굴곡만큼이나 순정하고 묵직하게 느껴진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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