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율(內在律) / 전상렬
천진난만 어렸을 때
그런 말 몰랐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런 말 안했다
오래 멀리 헤어져 살아도
사랑한단 그런 말 안했다
그냥 뜨거운 영혼
기나긴 내재율.
-『낙동강』, 신진문화사, 1971.
감상- 시의 운율을 얘기할 때 자유시나 산문시에 내재율이 있다고 하고, 시조와 같은 정형시에 반복되는 장단을 따져 외재율(외형률)이 있다고 한다. 겉으로 뚜렷이 드러나는 운율을 외재율이라 하고, 잠재적으로 깃들어 있는 운율을 내재율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런 구별 자체에 무슨 큰 의미가 있을 성싶지 않다. 시를 소리 내어 읽는 느낌이 어떤지, 말을 바꾸거나 줄여서 정서적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고민하면서 운율은 형성된다. 내용을 살리거나 도우면서 최적의 리듬을 찾으려면 정신의 긴장과 함께 언어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말을 아끼는 게 좋을 것이다.
전상렬 시인도 뜻과 정을 뜨겁게 품기만 할 뿐 좀처럼 말을 내지 못하는 스타일이었을까. 술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에 문우들과 어울리며, 13권의 시집을 내고, 그림을 곧잘 그렸으니 자신을 표현할 기회나 수단은 누구보다 많았을 텐데, 그럼에도 시인은 쉽게 내지 못한 말이 있단다. 그가 밖으로 내지 못한 말 중에 하나는 ‘사랑한다’는 말이다. 물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뜨거운 영혼”에서 넘치는 사랑의 온도를 가늠할 수 있다.
사실, 외재율처럼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요긴할 때가 있다. 게다가 그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이 일상이 되게끔 하는 것만큼 소중한 일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시인의 선택은 내재율이다. 뜨거운 온도의, 속 깊이 간직한 사랑이라면 굳이 꺼내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알게 될 것이다. 그다지 써먹을 일이 없는 ‘내재율’이란 단어를 자신의 사랑법과 연결시킨 시인의 감각이 신선하게 와 닿는 작품이다.
대구 용학도서관엔 전상열 시인이 간직한 시집 758권이 별도로 비치되어 있다. 1970년대 발간된 시집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비슷한 또래의 신동집 시인의 사인이 든 시집도 여러 권 있으니 이것으로 그들의 교류도 짐작해보게 된다. 전상열 시인의 가족이 기증을 한 것이라고 하니, 시인의 깊은 사랑법이 가족에게 선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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