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구내식당 / 허연

톰소여와허크 2021. 8. 2. 15:25

구내식당 / 허연

 

 

지하5층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

그렇게 시를 지킨다 우리 나이엔 근육량을 늘려야 한다느니 저금리 시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느니 이번 인사가 어땠고 누구 줄을 타야 한다느니……

 

이런 소식에서 멀어지기 위해

나를 소식에서 떼어놓기 위해 나는 오늘도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

넷이 앉는 자리에서도 여섯이 앉는 자리에서도 나는 늘 혼자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내가 어느 날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소식이 소화되지 않는 불내성증에 걸린 것이다

 

내려놓은 젓가락과 식탁의 끝선을 애써 맞추며

뿌래채소와 카레라이스를 씹는다

구내식당 벽에는 교과서에 실린 달달한 디저트 같은

시들이 걸려 있고 나는 마츠 에크의 대머리 백조처럼

 

오늘도 혼자 밥을 먹으며 외롭고 슬픈 주문을 외운다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문학과지성사, 2020.

 

 

감상 넷이든 여섯이든 점심을 먹으면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눌 때, 시인은 그러한 얘기에 좀처럼 동화되지 못한다. 건강, 자산, 주식, 인사 등등의 얘기가 매일의 밑반찬처럼 반복될 때 시인은 다른 세계의 공기를 흡입하고 싶은 것이다. 남들의 관심사가 문제라기보다는 자신이 그런 대화와 그런 소식들을 견디지 못하는 게 병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병을 고치고 싶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시인은 자신의 태도를 시를 지키는 일로 자부한다. 시는 당장의 이익과 쓸모, 현실적 유용성과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쓸모를 갖지 못한 소외된 것들에 눈을 주고, 유용성에 가려진 가치를 알아보는 게 시인의 자세란 생각도 든다.

시인은 여럿 대신에 혼자, 우아한 백조 대신에 대머리 백조를 기꺼이 선택한다. 그런데 시인이 외운다는 외롭고 슬픈 주문의 정체는 뭘까. 절창에서 나를 흔들지 않은 것들을 위해선 노래하지 않겠다는 구절도 괜찮은 주문 같긴 하다.

시인은 시집 뒤표지에 절창은 제외된 자들의 몫이라고도 적어두었다. 언제 다른 글에서 김종삼 시인을 제외된 자로 언급하는 것을 보았는데, 주식이나 근육량 얘기보다 훨씬 흥미롭지 않은가?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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