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1+1을 사랑한 게 / 강우현

톰소여와허크 2021. 8. 7. 15:58

1+1을 사랑한 게 / 강우현

 

 

꽃게가 탈피를 한다

수게가 등 쪽에서 껴안고 있다

며칠을 기다렸을까

무방비 상태에서 목숨을 깁는 시간

 

누군가 배가 고프면 큰일이다

몸에서 몸이 얼른 빠져나와야 한다

 

지은 죄도 없으면서 두리번거리다

은밀한 사랑에 기대 옷을 벗는 의식

 

걱정하지 말라는 듯

저 넉넉한 품은 누가 가르쳤을까

 

목숨을 걸고 지키던 각오를 향해

말랑한 몸을 드러낸 암게의 고백에 물이 오른다

 

우주의 한 부분이 드러낸

황홀의 앞면을 보며

모래땅에도 노래가 둥지를 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차하면 등껍질로 막아낼 것 같은

미쁜 웅크림에

조심조심 출렁거리는 바다

사랑의 문장보다 가슴이 뛰는 페이지다

 

, 경전이 될 때까지, 지혜, 2021.

 

감상 김용준은 근원 수필에서 그림 부탁을 받을 때 게를 즐겨 그리고, 화제로 창자 없는 게가 참으로 부럽도다/ 한평생 창자 끊는 시름을 모른다네”(윤희구)란 표현을 쓰기 좋아한다고 했다. 사실, 게도 입에서 항문으로 이어지는 소화기관이 엄연히 있으니 창자가 없다고 할 순 없다. 짝짓기를 하니 사랑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고, 시름이 없다는 것도 바깥의 시선일 뿐이다.

강우현 시인은 꽃게의 짝짓기가 예쁘게만 보였나 보다. 바닷가 모래벌이나 갯벌에서 1+1로 둘이 한몸 되는 꽃게의 사랑 현장에 있었을 것이다. 하나를 사면 하나 더 준다는 대형 마트의 전략인 1+1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오가는 마트에서 눈치 없이 사랑에 탐닉하는 꽃게가 시 쓰기에 영감을 주었을 수도 있겠다. 수게는 탈피가 진행되어 껍질이 무른 상태인 데다 강한 집게발로 암게를 안고 있기에 적에게 거의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다. 그렇지만 수게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믿음을 심어주고 있고, 암게도 미쁜 웅크림으로사랑에 집중하고 있다.

시인은 이 사랑을 받아 적는 중이다. 서로의 부족한 것을, 심지어 목숨까지 기워주는 이 작은 것들의 사랑 자체가 우주에서 가장 황홀한 일로 느껴졌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런 사랑 끝에 그물과 낚시가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조금 쓸쓸해진다. 이때는 집게발이 잘리고, 창자가 있든지 없든지 다 내놓고 식탁에 올려질 꽃게 운명에 대해서 애써 모른 체하는 게 입맛에 도움이 된다.

누군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을 읽고 간장게장을 못 먹게 되었다고 푸념하는데, 여기에 강우현의 1+1을 사랑한 게를 더하게 되면, 점점 입맛을 잃게 될 일만 남았다. 대신 조금 착해지는 기분은 들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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