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바늘 같은 몸에다가 황소 같은 짐을 지고

톰소여와허크 2021. 9. 14. 16:21

김준호 글 손심심 그림,바늘 같은 몸에다가 황소 같은 짐을 지고, 학이사, 2021.

 

 

감상 국악과 풍속학에 두루 정통한 저자는 노래와 글, 양수겸장으로 세상을 헤집고 나간다. 주량과 입담까지 장전하고 어디든 환영받는 예인이면서도 고독하게 글 쓰는 작업을 놓지 않는다. ‘근대 문물을 찾아서란 부제가 붙은 이번 글은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된, 자신이 잘 알고 흥미로워 하는 분야를 파고들어 결실한 것이기에 바쁜 중에도 지치지 않고 글을 썼으리라 짐작이 된다.

타임머신을 이전으로 반세기만 돌려도 세상은 지금과 많이 다르다. 요즘 아이들이 게임을 통해 모험을 대리만족하는 경우가 잦다면 저자의 유년은 농사일로 바쁜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몸으로 행하는 놀이와 모험이 넘친다. 바다 인근의 고향 강가에서 개구쟁이 벗들과 함께 얼음 배를 띄우고 삿대로 지치고 나가다가 얼음이 녹으면서 물에 빠지고 마는 아슬아슬한 추억담도 있다. 민속학 전공 학자답게 참새의 어원이 어떻게 되는지 밝히면서, 모심기와 벼 수확의 이행 정도에 따라 참새가 사랑받고 미움받는 일, 그 참새를 쫓거나 잡으려고 동원했던 방법 등이 흥미롭게 읽힌다. “탱자나무 가지를 잘라 노란 고무줄로 듬직한 새총을 만들어 참새들을 향해 연방 쏘지만, 거기에 맞고 짹 하고 죽는 참새는 한 마리도 없었다는 결구는 특별한 사건도 아니면서 웃음을 짓게 한다. 상황에 맞게 말의 재미를 살려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모험으로 가슴이 부푸는 재미와 다르게, 전하는 이야기에 슬픔이 배여 짠해지는 사연도 있다. 저자는 고무신 이전에 신분 별로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일괄하며 고무신의 역사를 꿰뚫고, 대공황 이후 고무신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의 애환과 고충까지 살핀다. 평양고무 직공 조합의 여성 노동자가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가 최초의 고공 시위를 벌인 장면도 소개하는데 저자의 아내이며 이 책의 삽화를 책임진 춤꾼 손심심의 그림으로 만나는 보너스도 있다. 또 다른 보너스는 이야기에 맞는 민요나 시편을 군데군데 놓아 둔 것인데 검정 고무신과 관련해서 인용한 시편도 한참 보게 된다.

 

고무 공장 큰 굴뚝 거짓말쟁이

뭐 하고 고동은 불어 놓고는

우리 엄만 아직도 보내지 않고

시치미를 뚝 떼고 내만 피지요

한태천 작사, <공장 굴뚝> (1930) 중에서

 

마침, 오일장과 관련된 마지막 페이지에도 보너스() 이야기가 나온다. “적당히 남는 것을 좋아하는 독특한 덤 문화 때문에 고향의 오일장이 아직도 당당히 설 수 있는 것 같다. 언제, 황소 같은 짐을 내려놓고 오일장 국밥과 막걸리에 소리 한 곡조 기꺼이 뽑는 저자를 만나게 될 것도 같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