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산문> 어른이 읽는 동화

톰소여와허크 2021. 9. 21. 05:14

이수경, 어른이 읽는 동화, 학이사, 2021.

 

 

<진상과 오지랖 사이>에 보이는 그녀는 산책길에 조용하지 않다. 지나는 이웃이나 학생에게 말을 건네고, 칭찬할 거리를 찾아서 칭찬해준다. 무단횡단하는 아이를 타이르고, 횡단보도의 안전지킴이나 아파트 경비원에게 먼저 다가가서 그들의 수고에 대해서 고마움을 표한다. 지나친 참견이나 친절일까. 진상이란 신조어는 무리한 요구나 나쁜 행위를 일삼는다는 의미로 통용되고, 오지랖이 넓다는 관용어는 필요 이상으로 여기저기 나서고 간여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럼 그녀는 진상 손님에 가까울까. 오지랖 넓은 여자일까. 이 산문 전체가 그 진상과 오지랖의 생생한 현장인 만큼 나름의 답을 얻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몇 장면만 보자.

<저 기억나세요?>는 아빠에게 맞아 피범벅 되어 울고 있는 아이를 자신의 옷에 핏자국 옮겨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아주며 아이의 사연을 들어주는 오지랖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이의 아빠에게도 약속을 받아내고, 이후 아이의 감사 편지를 받는다.

<사과 두 알>은 택배 노동자가 사과박스를 현관에 두고 승강기로 내려갈 때 그의 빈 뱃속이 냈을 꼬르륵 소리를 들은 그녀는 얼른 사과 두 알을 챙겨서 승강기를 추격해서 마침내 택배 노동자에게 사과 두 알을 전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때 그녀의 발목도 아픈 상태였다는 그런 오지랖이다.

<이웃이라는 이름>에선 아래층 담배 연기에 괴로워하며 경비실에 하소연하다가 아래층 사정을 알고 틈틈이 반찬을 갖다 주고, 국수 삶아 나눌 생각을 하는 오지랖이다. 이 오지랖은 동물에게도 미쳐 땡볕 아래 노끈에 묶여 있는 강아지가 안쓰러워 상가를 한 집 한 집 돌면서 주인을 수소문한다는 <측은지심>도 있다.

이런 오지랖이 선한 영향력이 되어 아름다운 장면만을 연출하는 건 아니다. 마트에 장보러 가서 카트를 몰 동전이 없어서, 계산원에게 동전이 없다는, 카드만 들고 왔다는, 동전 교환이 어렵다는 신호를 연거푸 보내는 건 동전 없이 카트를 이용하는 배려를 바란 것이지만 계산원은 이쪽을 더 어이없어 하며 동전 없으면 바구니를 쓰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백 원을 건넨 다른 아주머니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그녀는 계산원의 입장도 당연하다고 다시 헤아린다. “그날 카트를 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조금 더 친절하게 알려주길 바랐던 것은 내 입장인 것이다. 그러니 당연하다고 인정하면 서운할 것도 없다. 서운함은 곧 내 욕심인 것이다. 그날 나는 이불을 사오면서 내 안의 분별심과 이별하고 있었다고 했다. 아마 계산원 같은 분이 이 이 책을 읽는다면 셈과 행동이 예전과 달라질 거란 생각이 든다.

위에서 작가란 말 대신 그녀란 말을 쓴 것은 오지랖의 정체가 작가 본인인지 동화적 요소로 윤색한 부분이 있는지 판단하지 못해서다. 그만큼 별나고 아름다운 오지랖이어서 읽는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책을 읽는 내내 진상(眞相) 손님을 만난 듯 맘이 설렜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