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제 한몸으로 감싸는 상징』, 소소담담, 2021.
- 이 책은 저자가 읽고, 보고, 쓴 것들의 기록으로 인문학의 향이 그득 배여 있다. 저자의 생각뿐만 아니라 저자의 경험이나 사생활이 군데군데 언급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수창초등학교를 졸업한 저자는 모교에 있던 미국건축원조기념탑과 달성공원에 있는 상화 시비를 인상적인 탑으로 떠올린다.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나의 침실로> 중)이란 시구를 오래 품고 지나왔음을 얘기하는 배경엔, 아버지가 그 언저리에 노점을 차려서 어릴 적부터 오가게 된 이유도 있다.
소설가이며 검도 고수이기도 한 저자를 일깨워 한 단계 나아가게 만든 것은 <검도 안 하는 것도 검도다>라는 누군가의 말이다. 이런 상징적 문구가 상충되는 에너지를 한데 모으며 검도를 오래 즐기며 이어오도록 하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하니, 상징 자체가 성장 동력이 되었다기보다는 상징을 흡수하는 개인의 상태나 능력이 적잖게 작용했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프로이드와 융의 심리학에도 관심을 표명한다. 젊은 의사의 꿈(정신병자 소녀가 춤추는 요정이 되는 꿈)을 분석했던 융의 입장을 빌려 저자는 자신이 쓰는 글들에 대해서 “내 안의 어린 병자를 치료하겠다는 무의식적 의지의 발로”라고 보았다. 여기서 어린 병자는 억압된 예술적 재능을 의미한다. 예술적 재능을 꽃피우는 현실적 방법 중의 하나는 스승을 만나는 것일 텐데 저자는 자신이 가지 못한 길을 추천한다. 회의는 하되 스승을 견뎌보라는 것이다.
스승 없이 자신의 성장을 가져올 방법을 찾으라면 독서를 우선 떠올릴 수 있겠다. 저자는 “무한대의 우주 안에서 자신의 삶을 조금씩이라도 확장해가며 살고 싶을 때에는 독서가 딱 제격”이라고 강변한다. 저자는 자신이 읽었던 책 중에 로렌 아이슬리의 『그 모든 낯선 시간들』에 대해 명불허전이란 말까지 써 가며 높게 평가한다. 삶의 의미를 가지런히 해보려는 로렌 아이슬리의 태도가 궁금하다면 책을 읽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 성싶지 않다. 다음에 읽을 책의 목록에 넣어둔다.
저자는 문학적 글쓰기에 대해선 지도에도 없는 자기만의 로코보코를 찾아나서는 일이라고 했다. 로코보코는 『모비딕』에 나오는 등장인물 퀴이퀘크의 고향이다. 때로 책 한 권이 로코보코를 찾는 비밀 지도 역할도 해줄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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