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윤미애 옮김),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길, 2007.
-1931년 경 『베를린 연대기』를 쓰고 몇 차례 출판이 좌절되고 조금씩 수정 보완해서 1938년경 다른 이에게 원고를 맡긴 게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이다. 저자는 나치를 피해 망명하려는 계획이 좌절되자 1940년 자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의 유년시절 이야기는 장면 장면의 단절된 회상과 그런 중에 어떤 의미를 환기하려는 의도에 의해서 전체적으로 연결되는 서사적 재미는 줄었지만 몇몇 인상적 장면은 이를 상쇄할 만하다.
저자는 망명 시절, 유년의 이미지를 불러 내면을 치유하는 예방접종의 효과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고 서문에 밝혔다. 나비 채집하던 유년을 떠올리며, “나비로 가득 채워진 그 공기를 뚫고 떨림 속에서 들려온 단어는 바로 ‘부라우하우스베르크’이다”라고 했는데, 브라우하우스베르크는 포츠담에 있는 푸른 언덕의 여름 별장임을 상기하며 어린 시절의 포츠담이 푸른 공기 안에 놓여 있다고 회상한다. 학교생활은 즐겁지 않았나 보다. 피곤이 가중되는 걸 느낀 아이는, 늦잠을 실컷 자고 싶다는 생각을 수천 번이나 했다. 그 소원은 마침내 실현되었으니, “그것은 일정한 지위와 안정된 봉급을 받고 싶다는 희망이 번번이 좌절되었을 때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저자는 친절하게 실업의 순간을 두고, “바로 그때 나의 옛 소원이 실현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덧붙였으니 만족인지 자탄인지 유머인지 아픔인지 조금 헷갈린다.
몸이 아프던 시절, 베개와 이불로 요새를 만들고 손가락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놀기도 했고, 창가 눈보라가 건네던 이야기에 빠져들기도 했던 아이는 학급 문고 책을 통해서 글자의 눈보라에 빠지는 체험을 한다. “글자들 안에서 만났던 먼 나라들은 눈송이들처럼 서로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눈이 내릴 때 먼 곳은 더 이상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바빌론, 바그다드, 아코(이스라엘 북부의 갈리아 지방), 알래스카, 트롬세(노르웨이 북부 도시) 그리고 트란스발(남아프리카공화국 북동쪽 지역)도 내 마음속에 있었다. 이 장소들에 스며든 오락서적의 부드러운 공기 덕분에 피와 모험으로 얼룩진 그곳들은 나의 환심을 샀다”며 당시에 읽은 책들을 거역할 수 없는 매력으로 표현한다. 저자는 바빌론과 바그다드 문명의 상당 부분이 미군 폭격으로 폐허가 된 사정을 짐작하지 못할 것이고 그 옆의 이란 문명도 똑같은 위기에 직면한 현재 사정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저자는 하녀와 보모가 있는 유복한 가정 출신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가난한 사람들의 존재를 일찍 느낀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설렘 중에 끝내 창문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집들을 건너다보며, 그 창문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는 모든 것, 즉 고독 늙음 궁핍함을 담고 있는” 것을 느낀 후엔 자신의 크리스마스트리마저 낯설게 느껴졌다고 고백한다. 저자의 다른 책을 읽지 못했지만 신뢰가 생기는 대목이다.
유년의 이야기 마지막은 꼽추 난쟁이가 등장한다. 꼽추 난쟁이는 삶의 곳곳에 등장해서 자신이 가지거나 해야 할 일의 절반을 미래 채가는 역할을 담당하다가 종국에에는, “사랑하는 아이야, 아, 부탁이다.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주렴” 하고 속삭인다. 이 꼽추 난쟁이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선 좀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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