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 『다시, 지역출판이다』, 학이사, 2022.
- 1954년 대구출판번호 1-1로 시작된 이상사(理想社). 1987년 이상사에 입사한 이래, 책 읽고 만드는 일이 마냥 좋아서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까지 일하던 사람, 창업주의 신뢰를 얻어 이상사 경영을 잇게 되고 2007년 학이사(學而思)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까지 지역출판의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 책 파는 운까지 타고난 사람, 바로 학이사 대표인 신중현 선생이다.
배우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배우고. 학이사 이름은 인(仁)을 첫 번째로 생각하는 공자의 말에서 따왔다고 하니 놀랍게도, 거창 골짜기 어인(於仁) 마을에서 태어난 저자와 운명적으로 연결된다. 근래, 자기 스스로인지 주변에서인지 학이사 주지 스님으로 칭하는 걸 듣기도 하는데 출판사 대표보다 위상이 격상되는 건지 미치지 못하는 건지 조금 애매하다. 어찌 보면 ‘격’으로부터 자유로운 느낌마저 든다. 배우고 생각하는 데는 철저하면서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는 유연한 태도가 있었기에 오랜 시간 지역출판을 이어오지 않았나 싶다.
학이사 대표가 저자가 되어 쓴 『다시, 지역출판이다』를 읽어 보니, 학이사는 책만 만드는 회사는 아니다. 서평 쓰기 교실인 ‘학이사독서아카데미’를 운영하고 그 수료생이 다시 모여 동서양 고전을 토론하는 ‘책으로 노는 사람들’을 만들어 독서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좋은 서평이 지역 매체에 실리게끔 하고, 지역 신문과 연계하여 지역 출간 책을 대상으로 하는 서평 쓰기 대회를 마련하고, 지역 기업이나 뜻있는 사람들이 응원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하는 일을 저자는 부지런히 행한다. 이 밖에도 책을 선물하는 행사, 여럿이 모여 책을 오래 읽는 행사 등등을 벌리고 다음 행사를 기획한다. 이처럼 표 안 나게 혹은 표 나게 독서 문화를 진작하여 저자는 명망 있는 한국출판학회상까지 받게 된다.
이와 같은 성과는 “출판도 분명히 영리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관심을 그곳에 맞추면 성장하기란 쉽지 않다. 항상 출판사와 작가, 독자가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 원론적인 사실이지만 이 과정이 가장 어렵고도 필요하다” 또 “출판사, 서점, 도서관, 작가, 독자가 지역에서 어울려 책과 함께 놀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저자의 기본 철학이 씨앗이 되어 결실한 것으로 보인다.
틀을 부순,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은 정작, 학이사 책을 소개하는 저자의 글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출판사 대표가 자신의 출판사를 통해 나온 책을 홍보하는 것이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저자의 ‘내 맘대로 책 소개’는 그 기법의 새로움과 내용의 기막힘이 구텐베르크 씨가 활판 인쇄를 선보인 이래 처음 있는 일만 같다. 서평 문학이란 신(新) 장르에 넣고 싶을 정도다. 페북에 종종 뜨는 글을 보고, 글쓰기 매너리즘을 깨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일독할 기회를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 책에 부록처럼 묶여 나온 것이다. 책 소개 끄트머리에 졸시집 ‘몽실 탁구장’이 있어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읽어 보면 안다.
지역을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고, 글쓰기 신공까지 갖춘 저자는 술에 대한 헌신도 상상 이상이란 얘기를 듣는다. 이번 책에 넣지 못한, 사람 이야기나 술 이야기를 들고 나와 세상을 또 한 번 놀라게 해줄 것이란 기대는 아직 안 해 봤지만 지금 하게 된다. 일부러 산을 넘어 출근하면서 몸의 독을 빼고 있는 저자는, 배우고 생각하는 중에도 익을 만큼 익어야 하는 때를 간보고 있을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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