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산문> 나를 바다를 닮아서

톰소여와허크 2023. 1. 20. 13:41

반수연, 나는 바다를 닮아서, 교유서가, 2022.

 

 

- 산속 생활 이야기를 다룬 방송 자연인을 보면, 저녁 식사를 마친 다음엔 출연자가 어찌 살았는지, 무슨 이유로 산에 들어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속사정을 털어놓는 시간이 매회 이어진다. 산속 생활의 패턴이나 자연인의 고백이 식상하다는 평도 있지만 우연찮게 접한, 자연인의 삶에 눈과 귀뿐만 아니라 마음을 내줄 때도 있다. 이번에 읽은 산문집 나는 바다를 닮아서를 일독한 기분도 그렇다. 책에 빠져들어 잘 익은 이야기를 좋게 듣는 기분이다.

 

반수연 작가는 통영 서호시장에서 성장해서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갔는데 산문집에서 그런 내력과 사연을 살펴볼 수 있다. 성장배경이 된 서호시장 이야기는 작가의 첫 소설집 통영을 읽게 되면 다시 펴 보기로 하고, 산문집에 소개된 가족 이야기 중 남편 등장 장면을 찾아 책장을 뒤적여 본다.

작가는 밴쿠버 영화관에서 본 <다크 나이트>를 잊지 못한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의자를 뒤로 젖혀 남편을 불편하게 했던, 정확히는 남편 옆의 자신을 힘들게 했던 관객 때문이다. 남편은 불화와 갈등을 피하는 성격인 반면에 작가는 할 말을 해야 한다. 영어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 작가는 끝내 말을 낸다. 상대의 태도 변화로 성취감을 맛본 후에 남편의 표정도 살핀다. 사람 좋은 남편의 장점은 사는 데 단점이 되기도 하고, 그 단점이 연민이 되고 있다고도 했다. 연민이 사랑보다 힘이 더 세다는 말을 지금은 하지만 이전엔 말의 온도가 달라 보인다.

남편이 시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혼자 귀국했을 때다. 남편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사는 이민자의 삶이 고달프기 그지없는데 둘이 주고받은 편지에서, 사랑이 희미해지는 자리에 믿음이 채워져 있다는 남편의 어설픈 문장이 아내인 작가를 자극한 것이다. 작가는 믿음이 사랑을 대신하는 것에 대해 참지 못하고 남편은 자신의 불찰을 이내 깨닫는다. 작가는 믿는다고 다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면 믿게 되는 건 맞다고 하면서도 살다보니 발등을 찍는 건 대부분 사랑이기도 하지만이란 말을 덧붙인다. 장난스런 사족 같기도 하고, 직간접 경험에서 나온 진실한 경구 같기도 한 말씀이다. 남편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이 애초에 하고 싶어했던 목수 일을 위해 대학 목수 과정을 밟고 조금씩 자리를 잡는다. 작가는 남편을 응원하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위해 소나무로 된 책장을 짜준다.

언젠가 딸은 자신의 베트남 친구가 겪은 일을 작가에게 전한다. 침수된 도로에서 노트북과 휴대폰을 잃고 간신히 구조된 베트남 친구에게 딸은 그런 물건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친구를 위로해준다. 그리고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노트북도 망가지게 되었을 때 베트남 친구에게 해준 말이 역으로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딸에게 작가는 그러니 회복 가능한 것에 너무 괴로워하지 마라고 말해준다. 작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고 책을 읽는 독자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회복 가능한 것회복 불가능한 것의 구별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는 데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로 들린다. 작은 일을 작은 일로 보낼 줄 아는 마음을 책을 통해 배운다.

 

자연인중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 쓸 줄 아는 목공인이 종종 등장한다. 완성품이 주는 쓸모에 감탄할 때도 많다. 글 쓰는 일도 그럴 것이다. 자신에게 절실한 것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굴려보면서 문장을 만들고 책을 엮는다. 자연인의 저녁 시간을 다시 생각해본다. 술술 풀리는 이야기보다 자연인의 눈물이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줄 때가 있다. 작가 이야기에 끌리는 것도 아마도 그 진정성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