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숙, 『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 자음과모음, 2014.
- 언젠가 딸아이에게 선물로 사준 책을, 딸은 바로 읽지 않고 얼마쯤 묵혀 두었다가 읽고는 다시 내게 내밀었다. 내가 읽지 않은 걸 알고 재밌다며 건넨 것인데 나 또한 얼마쯤 묵혀 두었다가 뒤늦게 읽는다. 재밌다.
중3 나이쯤 되는, 주인공 태산이는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사고로 돌아가신다. 아버지의 유품 상자엔 사진 한 장이 나온다. 해리 미용실 간판을 단 사진 뒷면, 태산이한테 그곳 미용실을 찾아가라는 당부가 한 줄 적혀 있다. 사진 한 장은 슬픔 속에서 여행 기분을 내고 모험 기분을 내는 단초가 되고, 해리 미용실의 정체는 조금씩 비밀을 벗기 시작한다.
소설 제목으로 차용된 <네버 엔딩 스토리>(김태원 작사 작곡, 부활 노래)의 말뜻 그대로 이야기가 끝나는 시점에 이르러서도 그다음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노랫말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별개로 이미 지난 일은 지난 일이란 깨달음도 함께 있음을 헤아리게 된다.
노래 <네버 엔딩 스토리>를 즐겨 부르는, 소설 속 또 한 명의 주인공은 태산이의 친구인 기형이다. 서로 간에 욕도 하고 탓도 하고 일을 꼬이게도 하지만 태산이의 외로움이 견딜 만하게 느껴진다면 이 친구 덕분일 것이다.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개개인 입장에선 언제든 자기편이 되어주는 우정이 귀하디귀한 것이라고 하겠지만 또 그러한 성향으로 인해 사소한 일로도 관계가 삐걱거리게 되는 게 현실이다. 소설 속 두 아이는 우정을 셈하지 않고, 우정에 값하는 수고를 따지지 않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모습을 다소 과장적으로 보여주기에 오히려 더 순수하게 와 닿는다.
그런 순수와 가장 동떨어진 것은 어른이다. 태산이 가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떡집 아저씨와 오촌 아저씨의 갈등 사이에 돈 문제가 있음을 알고 태산이는 주머니의 돈을 허공에 뿌리는 제스처까지 취한다. “너, 왜 그러냐? 네가 무슨 백치 아다다냐? 왜 돈을 뿌리고 난리야?”
이때 돈을 주워 오며 돈의 소중함을 얘기하는 건 기형이다. 책을 읽을 것 같지 않던 기형이가 『백치 아다다』(계용묵, 1945)를 언급하며 대화하는 게 어색하긴 하지만 작가 자신이 그만큼 『백치 아다다』를 좋게 읽은 영향이 남아서 그랬을 것이다.
돈 대신 사랑만을 택했던 아다다는 강물에 빠졌지만 태산이와 기형이는 순수를 잃지 않으면서도 한 세상을 건널 수 있는 수영 실력을 웬만큼 갖췄다는 생각이 든다. ‘해리 미용실’의 정체가 밝혀지고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후편에 대해서 걱정을 놓는 이유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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