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 『통도사 가는 길』, 민음사, 1996.
조성기 작가의 소설집에서 단편 「통도사 가는 길」과 「불일폭포」는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인물에 얽힌 사연들의 실마리를 좇거나 수습하면서 인물의 뒤를 따르는 여정은 퍽 흥미롭다. 표제작이기도 한 「통도사 가는 길」의 여정과 사건을 메모해 본다.
사내는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굴원 시집 『초사』를 가방에 넣고 대구행 고속버스를 탄다. 대구터미널 인근 여관에서 일박하면서 방음이 안 되는 방에서 「반야심경」과 『불의 정신분석학』을 오가며 무촉과 감촉에 대한 화두를 품는다. 이튿날 사내는 동대구역에서 삼랑진으로 가는 기차를 탄다. 삼랑진역은 이십구 년 전 아버지가 교원노조일로 수갑을 찬 채 부산에서 서울로 압송되어 갈 때 어머니가 여기까지 따라왔다가 남편을 눈물로 보내고 돌아서야 했던, 어머니의 한이 서린 공간이다.
삼랑진역에서 물금역으로 가는 완행기차에서 봄 풍경에 취했다가 사내는 이별을 선언한 ‘그녀’를 생각한다. 물금에 닿아서는 물금(勿禁) 이름이 주는, 금하지 않는 것과 금하는 것 사이의 긴장과 역설에 대해서 사유하기도 한다. 사내는 물금 버스정류장에서 양산 가는 버스를 타고, 양산에서 다시 통도사 입구까지 가는 버스로 갈아탄다. 사내에게 통도사는 막연하게나마, 길(道)을 뚫고 싶은 욕망을 떠올리게 한다. 사내와 그녀 사이 막힌 길을 뚫고 싶은 마음이 여기까지 자신을 몰고 온 것도 같다. 사내는 부처가 없는 대웅전에서 허공을 본다. 사내는 자기 자신도 그녀도 허공 속으로 빨려들어 사라지는 걸 느낀다. 대신 그 자리에 삼랑진역에 홀로 남았던 어머니가 서 있는 모습을 본다.
그제서야 사내는 통도사가 통도(通道)가 아니라 통도(通度)인 걸 깨닫는다. “나는 왜 통도를 ‘通道’로 알았을까”로 시작되는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나지만 정작 ‘通度’가 뭔가에 대해선 작가가 말을 아낀다. 작가 의도를 놓친 것이라면 통도의 문을 지나고도 통하지 못한 셈이긴 한데 그것도 그리 중한 일은 아닐 것이다. 놓쳐서 더 풍성해지는 반전의 묘미도 늘 있는 일이다. 통도의 도는 길(道)이 아니라 했지만 통도사에 닿는 여정을 감안하면 도(度)가 곧 도(道)를 밟아온 결과로 있다고 말해도 무리는 아니다.
작가가 발견한 통도의 의미 속엔 특정 가족이나 개인에게 가한 시대의 고통을 위로하며, 더 좋은 세상으로 건너가려는 제도(濟度)의 염원도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점은 「통도사 가는 길」뿐만 아니라 「불일폭포」도 마찬가지다. 감각적인 연애 행위나 감정에 대한 묘사 중에도 인간을 훼손하는 폭력 시대를 증언하며 더 근원적인 것을 고민하게 하는 추동력이 작가에게 있다.
「홍소령기」의 한 장면엔 버스 손잡이를 보며 ‘붙잡고 있는 것’과 ‘붙자고 있지 않은 것’의 엄청난 차이를 느끼는 대목이 나온다. 어떻게든지 소설의 제재를 꼭 붙잡고 있다는 소설 속 소설가는 작가 자신일 것이다. 특히 「통도사 가는 길」과 같은 여로 소설은 낯선 곳이 익숙해지고 익숙한 곳이 낯설게 되도록 이야깃거리를 붙잡고, 붙잡고 늘어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소설 쓰기만 그런 건 아닐 테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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