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윤, 『풍경의 에피소드』, 시와에세이, 2023.
- 명륜동, 용산동, 상도동, 신림동 지하실 셋방, 난곡동, 부천, 영등포. 그리고 대구.
이창윤 시인이 살았던 곳이다. 용산동과 후암동은 해방촌이 있는 남산도서관 일대인데 이 시절 어머니를 여읜다. 용산동의 어린아이는 훗날 시인이 되어 이때의 슬픔을 “기억의 안간힘은 펄럭임도 없이/ 정지화면으로 멈춰 있네요”(「기억의 처음」)로 표현해 두었다.
상도동은 아버지가 빚쟁이를 피해 간 곳이다. 그 무렵 굶주린 남매들에게 아버지는 집의 괘종시계를 저당 잡히고 그 돈으로 국수를 사준다. 이 때의 심정은 시 「그날의 국수」로 남았다. 시인에게 괘종시계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난곡동으로 이사하면서 시계는 시간을 틀리게 알려주고 아버지도 부쩍 늙어간다. 괘종시계는 “연로해가는 아버지처럼 낡아가면서 힘겹게 존재를 버티고 있었”던 아버지의 분신이다. 괘종시계도 아버지도 둘 다 멈추었으나 시인의 글로 이렇듯 남았으니 책을 쓰게 된 보람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난곡동 시절도 고단했던 기억이 더 많다. “뒷집 술주정뱅이가 도끼로 찍어 허물어진 담벼락 아래/ 따먹지도 못할 억센 깻잎과 잡풀들이 자라고/ 폭우가 쏟아지면 비가 새던 기왓장”아래 “청춘이 독약 같다고 낙서하던 스무 살”(「묻어둔 고백」)이 있었다.
난곡동 시절이 마냥 슬픈 것만은 아니다. 온 식구가 모여 김치만두를 해먹는 장면이 그렇다. 다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직접 빚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삶이 바쁜 이유가 컸다고 고백한다. 지금도 시인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만두를 꼽는 만두 마니아를 자처한다.
산문의 중반 이후는 시인의 근황과 현실에 대한 단상들 위주로 꾸려져 있다. 결혼 이후 IMF를 겪으며 시인도 생업의 한 축을 담당한다. 뒤늦게 독서지도사 자격을 따고 국문학과를 졸업해서 그것으로 아이들 글쓰기 지도에 나섰으니 여러 선택지 중에 시인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택한 것이다.
시인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크게 투사한 것이 지금까지 시를 품고 산 밑천이란다. 현재 시인은 대구 주소지를 잠시 비우고 통영에 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후 삶을 짐작하게 하는, 또 이창윤 작가에게 시는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문장을 인용해둔다.
“나는 시를 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시를 썼다. 고난을 견디고 고통 속에 허우적대는 나를 치유하며 해방시키기 위해 시를 쓰고 있다. 시는 나의 주치의이며 처방약이다 시를 쓰는 일은 누가 강요해서도 아니고 내 스스로 강요하지도 않는다. 시가 오면 받아쓰고 오지 않으면 기다린다. 시가 오지 않으면 시가 올 때까지 산문을 쓰며 기다릴 것이다. 생을 마칠 때까지 내가 쓸 수 있는 만큼 형편이 닿는 대로 쓸 것이다. 너무 목숨 걸지 않고 일상을 살듯 시를 쓰는 것 즉 시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책 표지화는 설악산 풍경으로 시인의 유화 작품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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