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영화)

카우보이의 노래

톰소여와허크 2023. 7. 17. 22:07

<카우보이의 노래>, 코엔 형제(에단 코엔 /조엘 코엔) 감독, 2018.

 

여섯 편의 중단편이 실린 책 한 권의 표지 장식 그림은 반쯤 살고 반쯤 죽은 듯한 고목이다. 책 제목은 The Ballad of Buster Scruggs. 이 책을 읽어 주는 장면을 시작으로 영화는 각각의 에피소드를 전개한다. 영화는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고 The Ballad of Buster Scruggs의 목차 하나하나가 영화 소제목이 되는 식이다. 목차를 옮겨 적는다.

 

1. The Ballad of Buster Scruggs 버스터 스크럭스(카우보이 이름)의 노래

2. Near Algodones 알고도네스 인근

3. Meal Ticket 밥줄

4. All Gold Canyon 금빛 협곡

5. The Gal Who Got Rattled 덜컹거리는 처자

6. The Mortal Remain 시체

 

‘All Gold Canyon’ 편은 잭 런던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The Gal Who Got Rattled’는 스튜어트 에드워드 화이트의 소설 내용을 빌려 각색했기에, 영화에서 보듯 오래되어 보이는 소설집 The Ballad of Buster Scruggs가 실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코엔 형제의 시나리오집으로 볼 순 있겠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기존의 서부영화처럼 권선징악과는 거리가 멀다.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개인의 원수를 갚거나, 주민들의 숙원을 해결하고 석양으로 표표히 사라지는 일도 없다. 오히려 등장인물이 파국에 이르는 장면이 많은데 그 과정에 짐짓 가벼운 농담이나 행동이 가볍지 않은 인생 서사로 물려들면서 극의 몰입감을 높여 준다.

여섯 편의 에피소드 중 ‘The Gal Who Got Rattled’ 편도 여운이 짙다. 서부 개척의 통로인 오리건으로 향하는 행렬 중 오빠를 잃고 혼자 된 처자가 있다. 길게 이어지는 마차 행렬 속에 있으니 덜컹거리는 처자라는 번역이 그럴듯해 보이고, 그 결과를 생각하면 낭패한 처자란 번역에도 수긍이 간다.

마차 행렬의 앞과 뒤에 배치된 두 명의 지킴이는 마차 행렬의 길을 안내하고 인디언 등의 침입자로부터 일행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 중의 한 사내는 동료의 존중을 받는 이 바닥 최고의 실력자다. 사내는 행렬에서 이탈한 처자를 구하며 그 명성에 값하려는 순간 허망한 결과를 맞이한다. 잘못된 정보에서인지, 과도한 신념에서인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처자에게 남긴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사내의 계면쩍은 얼굴은 영웅과 우상의 그것이 아니라 안쓰럽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한, 변변치 못한 위인의 낭패스런 얼굴이다.

처자를 위기로 몬 주체는 공격성을 띤 인디언 부족이기에, 실제 원주민의 땅을 강제 점령한 서부 개척민의 일방적 시각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 목소리가 있다. 이 비판은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목소리를 좀 더 내기 위해선 코엔 형제의 다른 영화도 봐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 굳이 코엔 형제를 옹호하자면 그런 비판을 감수하며 자기모순 속에 살며, 내일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협소함과 나약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정도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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