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치 감독이 <나의 올드 오크>를 봐야겠다는 생각에 독립영화 상영관인 오오 극장(대구 만경관과 곽병원 사이에 위치)을 찾았다. 혹시나 영화 상영 중에 기침이 나올까 봐 기침약 먹고 기침약 비스무리한 것도 찾아서 입에 털어넣고 목캔디까지 챙겨서 갔다. 그런데 가서 본 영화는 <나의 올드 오크> 대신 <사랑은 낙엽을 타고>다. 좋아하는 걸 아끼고 싶어서 라고 해두자.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핀란드 출신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작품이다. 영국 출신 켄 로치 감독처럼 주류보다는 비주류 특히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많이 만들어온 것 같다. 영화 속 남자와 여자도 일용직 노동자로 고용이 불안한 상태고 실제 해고와 재취업을 반복한다.
그런 중에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남자는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 어렵게 금주를 결심한다. 서사나 감정이 과하지 않으면서 부족한 것은 더욱 아니라서 차분한 몰입 속에 있었던 것 같다. 군데군데 음악이 흐르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 내내 러시아 공습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 상황을 라디오로 듣는 장면이 나온다. 전쟁을 걱정하고 반대하는 감독의 의도가 보인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로 촉발된 전쟁이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으로 이어지는 걸 근래 보고 있다. 전쟁의 향방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영어 제목은 <fallen leaves>니 다소 엉뚱한 번역이다. <fallen leaves>에 가여운 사람들이란 의미도 있을 듯하다. 빵을 걱정하며 힘들게 사는 것도, 사랑을 잃는 것도 다 가여운 일이다. 또 생각하면, 생명과 평화를 앗아가는 전쟁이야말로 주변을 <fallen leaves>로 만드는 주적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보는 중에 기침을 하지 않았다. 끝나고 기침이 도지는 걸 보니 기침병이 나은 것은 아닌데 필요할 땐 저절로 조절되는가 보다. 그나저나 <나의 올드 오크>도 봐야 되는데...(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