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영화관 오오 극장에서 전번에 <사랑은 낙엽을 타고>(아키 카우리스마키, 2023)에 밀려 못 봤던 <나의 올드 오크>를 봤다.
올드 오크는 영국 폐광촌 마을의 술집 이름이다. 대개 가난한 노동자들이 주거하는 지역이다. 나라에서 받아들인 난민들이 이곳에 많이 들어오면서 갈등상황이 연이어 불거진다. 올드 오크 마을에 이전부터 있었던 주민들은 난민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부류들이 많다. 동네가 지저분한 곳이 되고 있다는 생각,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들은 몹시 괴로운 심정이다.
또 일부긴 하지만 난민들의 상황을 걱정하고 이들의 적응을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한 술집 그 이상의 동네 아지트 역할을 해오던 올드 오크의 주인 남자는 이 공간을 더 크게 개방해서 난민들과 이를 돕는 주민들이 밥 한 끼 나누는 회합의 장소로 기꺼이 내주기로 한다. 그 과정에 오랜 친구들과 갈등하며 가게 문을 다시 닫아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시리아 난민 가계의 슬픔을 애도하는 발걸음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마침내 거리 전체를 애도의 물결로 가득 차게 만든다. 앞서 봤던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이 우크라이나 전황 소식의 반복적인 정취를 통해 전쟁을 걱정하는 소시민의 마음을 전했다면 켄 로치 감독은 그런 마음의 연대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셈이다.
클로즈업 되는 깃발엔 큰 참나무 위로 Strength, Solidarity, Resistance(용기, 연대, 저항)란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다수의 노동자가 잘 살아야 하고 노동자가 잘 살기 위해선 노동이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데 힘을 가진 자본가와 고위직들이 노동을 대우하지 않고 차별하고 더 빈곤으로 몰아간다면 그런 세력에 저항하지 않고 다른 길이 무엇이 있겠는가. 저항을 위해선 용기도 필요하지만 저항의 결실을 위해선 연대를 통해 저쪽과 힘의 균형을 갖거나 넘어서야 한다는 감독의 의도를 나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올드 오크 사람들이 한통으로 같은 목소리를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하고 사람답게 사는 정책을 요구할 때 안방에서 이를 비웃는 사람들도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더 나은 삶을 위해 내부의 힘을 키우고, 갈등을 최소화하는 길을 모색해야 할 텐데 켄 로치 감독이 내놓은 방안은 뭘까. 내가 읽어낸 건 극히 단순하다. 밥 한 끼 같이 나누는 공간의 마련이다. 이 또한 쉽지만은 않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하지만 그런 길을 갔기에 따스한 연대에서 오는 감동이 몇몇 관객들의 코를 훌쩍이게 한다.
혹 영화 제목에 영감을 주었을지 모를 노래 <Tie a Yellow Ribbon Rund the Old Oak Tree>(1973)를 잠깐 들어본다. 버스 승객이 모두 환호하는 가운데 참나무에 노란 리본이 걸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과 연대를 통해 더 나은 삶을 꿈꾸는 발걸음이 살짝 겹쳐진다. 조금은 억지스런 겹침이지만 수정하고 싶지는 않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