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 / 박광영
시골집에 가면 제일 먼저 이름을 부른다 소리치면 큼지막한 꼬리 흔드는 소리 성큼 대문 틈새로 주둥이를 내밀고 낑낑거린다
나는 여태 어느 누구에게도 저렇게 거한 환영식을 열어 본 적이 없다 지나가는 인연에게 미세한 칼날 조각 하나 찔릴까 두려워했다
개는 제 밥을 나눌 줄도 안다 까치에게 밥을 빼앗기듯 하지만 결국 함께 살자며 공양하는 것이다 늘어선 까치 떼 한 마리가 공양을 마치면 다른 한 마리 차례로 들어선다 늙은 개는 쪼그리고 앉아 멀찌감치 구경만 하고 있다 까치를 키우는 것인지 개 한 마리 키우는 것인지
그동안 밑지지 않으려 살았다 모래폭풍이 쓰나미처럼 내리꽂는 내 입속은 늘 꺼끌거렸다
오늘 모기에 여럿 물린 종아리 물파스를 바른다 무정형의 붉은 반점은 죽기 살기로 붙어 뜯어먹은 흔적 어쩌랴 세상에선 나 또한 개밥인 것을
- 『발자국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 문학들, 2022.
감상 – 개밥바라기가 금성을 뜻하는 것인지는 알아도 그 어원까지는 살펴보는 경우는 많지 않은 듯하다. 개밥바라기는 저녁 무렵의 서쪽 하늘에 보이는 금성을, 샛별은 새벽 무렵의 동쪽 하늘에 보이는 금성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바라기는 주둥이가 넓은 밥그릇이란 뜻으로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단어다. 그러니 개밥바라기는 한마디로 개 밥그릇이다. 개밥바라기는 저녁 무렵, 개 밥 줄 때 보는 별이라서 이름을 그리 붙였다는 설도 있고, 혀로 핥고 깨끗하게 비운 개 밥그릇의 반짝임과 결부된 이름이란 설도 있다.
금성의 또 다른 이름은 계명성(啟明星)이다. 문이든 입이든 열어서 밝게 하라는 의미가 있는 줄 헤아리면, 개밥바라기에 대한 어원도 달리 생각할 수 있다. 개밥을 ‘개의 밥’이 아니고, ‘밥을 열라(開)’는 의미로 새길 수 있다. 말하자면 개밥바라기는 혼자 배부르지 않고 모두에게 열려 있는 밥을 몹시 바라는 마음이고, 그 마음이 별처럼 빛나서 곧 개밥바라기 별이 된다. 나는 개밥그릇 운운하는 해석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밥을 나누는 쪽의 해석을 밀고 싶다.
제 밥그릇에 코를 박고 혹여 밥 한 알이라도 앗길까 봐 긍긍대거나 짖어대는 개를 못 본 것은 아니지만 박광영 시인의 시골집 개는 사뭇 다르다. 적게 먹고 이웃 까치들에게 많이 양보하는 덕을 가졌다. 시인은 사람을 조심할 줄만 알았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면이 부족했다든지, 밑지지 않고 살려고만 했지 나누는 데 인색했다든지 하는 면을 슬쩍 고백한다. 그런 자신보다 견공의 자세가 더 윗길인 걸로 대우한다. 물론, 스스로 낮은 곳을 자처하며 삶을 성찰하는 시인의 모습에서 오히려 삿됨 적은 시심과 사람 향기를 맡게 될 줄로 안다.
개밥에서 나눔을 배운 시인은 모기에게 보시하고 그 후유증으로 물파스를 바르긴 하지만 삶의 일면을 자기 몸으로 앓아서 깨우치고 그걸 시의 언어로 표현했다. 흔히 개 밥그릇에 도토리 하나를 외로운 처지를 일컫는 말로 쓰지만 이 순간만큼은 삶을 사유하는 철학자로 치겠다. 개밥이 개밥으로 끝나지 않는,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 시인은 기꺼이 외톨이를 감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밥이 뭔 대순가 묻는다면, 대수롭지 않은 것이 결국 대수(大數)가 된다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최소한 개밥이 개밥바라기를 부른 것은 맞지 않나 싶은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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