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작(獨酌) / 나석중
목련은 어떤 지극한 마음으로
꽃을 향해 가는지
꼿꼿이 세운 그 꽃봉오리 끝으로
나 속절없이 당신에게 안부를 적고 싶네
텁텁한 막걸리 한 병이면 당신을 사흘 견디네
돼지고기 한 근 끊어 김치찌개를 끓일 때
문득 당신이 찾아오네
그러나 아주 가끔 하루 한 잔으로 족하네
당신은 팔부 능선쯤 차오를 때 제일이네
외로움도 아껴야 해
나 외로움을 너무 낭비하는 게 아닌지
넉넉히 차오른 당신을 굽어보는 동안
어느새 낮달처럼 떠오르는 당신은 웃는지
내가 당신을 당신이 나를 달래주는
오늘 당신은 나의 반주라네
-시선집 『노루귀』,도서출판b,2023. / 『목마른 돌』(2019)
감상 : 독작이란 제목의 시가 많은 줄 안다. 술을 하든 안 하든 독작이란 제목 자체가 삶의 한 구경(究竟)에 가 닿아 있는 듯한 느낌도 준다. 나석중 시인의 독작을 읽는 김에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 4수를 찾아보니 그중에 두 구절이 마음에 남는다.
醉後失天地(취후실천지),兀然就孤枕(올연취고침)。
不知有吾身(부지유오신),此樂最爲甚(차락최위심)。
취하면 세상천지 잊어버리고 올연히 홀로 잠이 드네.
내 몸이 있음도 알지 못하니 이 즐거움이 최고라네.
술의 매력 중 하나는 밥벌이든 인간관계든 일상의 여러 고민을 얼마쯤 내려놓게 하는 일이다. 세상사 잊고, 애써 잡고 있던 자신도 놓을 수 있다면 왜 아니 즐겁겠는가. 혹 여럿이 마시는 중에 자신을 지나치게 내려놓으면 그 후유증을 치러야 할 것을 걱정할 수 있지만 독작은 그런 염려로부터 자유로운 이점이 있다. 다만 홀로 마시는 만큼 고독이 더 사무칠 수는 있겠다.
추석쯤 해서 읽는 나석중 시인의 「독작」은 더할 수 없이 고독한 중에도 슬프고 아름다운 느낌이 교차한다. 슬픔은 시인의 외로움에 공감하는 마음으로부터 생겼다면 그런 정서에 젖게끔 하는 표현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해도 되겠다. 사실 이런 구분보다 이 모든 것이 어울려 「독작」 앞에서 마치 알맞게 폭 끓인 찌개를 대하는 마음이 된다.
이 시의 고독감은 목필(木筆)로 쓴 연서가 당신에게 닿지 않는 데 그 이유가 있어 보인다. 술잔 저편에 아니 술잔 속에 당신이 오는 걸 시인은 꿈꾸듯 그린다. 혼자 먹는 밥, 한두 잔 곁들이는 반주(飯酒)는 반려(伴侶)에 대한 그리움과 다르지 않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내가 당신을 당신이 나를 달래주는” 지극한 순간을 맛보는 것도 그리움이 그만큼 깊고 절실한 탓일 게다.
비 오는 날, 어느 처마 낮은 허름한 가게에서 빗소리 반주하는 독작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몇 잔 술로 내가 나를 놓는 경지까지는 못 가더라도 주변의 사람을 그리워하는 독작이라면 조금은 권할 만하지 않겠는가.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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