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시초(夏日詩抄) / 신동집
여름도 방학철 오전 한때를 서창(西窓)에 다붙은 포도시렁 아래 고흐의 걸상을 내다놓고 한동안 시름없이 잠기는 일이 있다. 댓평 될까마는 땅그늘이지만 오전엔 집에서도 기중 시원한 곳이다. 담장과 시렁 사이로 열린 하늘 조각이 또한 유난히 맑은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여름날의 내 영혼의 빛깔이랄까.
이 파란 하늘 조각을 무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덧 허공엔 빈 조롱이 하나 흔들리듯 말며 시름없이 걸려 있다. 이따금 한두 마리 이승의 새는 날아가도 그들 눈에 이 조롱은 보일 리 만무하리라. 조롱 속에 담긴 내 마흔의 여름날들, 생각은 하염없이 물레실을 푼다.
어느덧 뙤약빛도 발밑으로 밀리고 시렁에도 후끈한 김이 서리면 다른 데로 나는 또 그늘을 옮겨야 한다. 그러나 조롱은 매양 하늘 깊은 한자리에 걸려 나를 따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상념도 이날은 이걸로 끝나는 셈이다.
한 번은 나도 이 집을 떠나리라. 떠난 뒤에도 여전 조롱은 한 자리에 걸려 어느 다른 주인의 여름 한 철을 즐겁게 해 줄는지, 오다 가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행인』 1975 / 『신동집 시전집』, 영학출판사, 1984
감상 : 신동집(1924∼1983) 시인은 대구 인교동 오토바이 골목에서 태어나서 인근 수창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일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영남대, 계명대, 효성여대에서 영문학을 강의했던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문학 교과서에 실린 「오렌지」란 시 한 편으로 철학적인 주제를 다룬 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시전집을 읽은 개인적 소감으로 말하자면, 신동집 시인의 시가 영미시와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시에 나타난 기본 정서와 표현은 서정시의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시인은 영미문학과 시 외에도 음악과 그림에도 상당한 관심과 소양을 갖고 있었다는데 시집에서는 고흐 이름이 여러 번 언급된다. 고흐의 삶이나 그림을 파고들어 시로 형상화하기보다는 일상의 생활 속에 고흐를 한 번씩 호명한다. 이를 테면, 「하일시초(夏日詩抄)」에서 자신이 앉은 의자를 ‘고흐의 걸상’이라고 부르며 고흐에 대한 애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우리가 아는 고흐는 고갱과 심하게 다툰 후 자신의 한 쪽 귀를 스스로 자른 인물이다. 고흐는 그 사건 전후에 걸쳐 <고갱의 의자>, <고흐의 의자>를 그리게 된다. 고갱에게 내준 의자는 팔걸이가 있는 고급 의자이고 고흐의 것은 별다른 장식이 없는 단순한 의자다. 고갱의 의자에 놓인 책과 양초에 대응되는 자신의 것을 고민하다가 고흐는 파이프와 담배 주머니를 의자에 올려 두고 그림을 완성했다. 테오에게 보낸 고흐 편지에서 관련 부분을 찾아보니, 두 습작 모두 “밝은 색에 의한 빛의 효과를 추구”했다는 내용이 있어, 역시 고흐답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머잖아 자신의 그림을 알아줄 거라고 믿고 그림의 정진을 위해 언제든 치열했던 고흐다.
「하일시초」는 여름 어느 하루의 풍경과 풍경 속에 놓인 자신의 모습을 스케치하듯 남겨놓은 시다. 마당 한 쪽의 포도시렁(포도 덩굴을 올려놓게끔 나무를 편평하게 혹은 아치형으로 짜놓은 것) 그늘에 의자를 두고 시인은 책도 읽고 시상도 다듬는 중이다. 어찌 보면, 돈 안 들면서도 생산적인 시인의 피서법이다. 한 번씩 새들이 날아들면 담장 위의 나무에 눈길을 주고 먼 데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을 것이다. 평화롭고도 여유로운 풍경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그림이 아주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나 혼자 이 조용한 풍경에 물음표 하나를 스스로 만들었다가 지웠다가 다시 그리기도 한다. ‘조롱’ 즉 ‘새장’이란 표현에 막힌 것인데 철학적 주제를 시로 형상화하는 시인답게 조롱을 벗고 더 큰 자연이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의도가 숨어있었던 건가 싶었다.
그러다가 한 순간 허탈해진 것은 조롱이가 조롱박인 줄 뒤늦게 깨친 것이다. 포도시렁이란 말에 혹해서 그렇게 생각 못했을 뿐이다. 조롱박 모양의 ‘조롱이떡’이란 말도 있으니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조롱이를 조롱박으로 보는 데는 무리가 없다. 그러면 시상도 자연스레 연결된다.
조롱에 조롱당한 기분이 들었지만 “한 번은 나도 이 집을 떠나리라.”는 독백만큼은 묵직하게 와 닿는다. 주거지 이전을 염두에 둔 표현일 수 있고 훗날, 육신의 집을 떠나게 될 상황까지도 그려볼 수 있다. 떠남 그 자체도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모험을 살게 하고, 자기 존재를 더욱 성숙해지게끔 하는 기회의 장이 아니겠는가.
‘조롱’이든 ‘조롱박’이든, 이쪽이든 저쪽이든 서로 무관한 것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 암만 자유로운 정신이고 싶어도 몸의 집에 깃들지 않고는 다른 도리 없고, 시의 낱낱도 시집에 들어야 본때가 더 나는 것도 사실이다.
고흐의 의자에 앉게 되면 시의 진의에 대해서 좀 더 다른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철 그늘에 놓인 고흐의 의자를 이 가을 볕바른 양지쪽, 고갱의 의자 옆으로 옮겨올 일이다. 고흐가 고갱에게 쓴 편지 한 구절이 스친다. “그림에서 성취한다는 것은… 슬픔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는 예술을 만드는 것”이라는.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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