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병꽃나무를 들이다 / 이비단모래

톰소여와허크 2023. 10. 25. 21:48

병꽃나무를 들이다 / 이비단모래

 

 

뒤꼍 흰 병꽃나무 무성한데

왜 나는 남의 붉은 병꽃을 탐했을까

 

-그 꽃 예쁘대

 

막걸리 한 잔 주며 건넸을 뿐인데

신새벽 뿌리째 뽑아왔네

 

굳이 달란 건 아니고, 그냥

갖고는 싶었던 남의 것

그것도 남자의 홀로 된 눈동자에 담았을 꽃을

 

-꽃 피면 같이 보자고

 

꽃이야 거기 있으나 여기 있으나 똑같은데

왜 내 울안에 놓고 싶었을까

사랑을 내 마음에 가두고 싶었을까

 

머언 눈으로 봐도

그 자리 있을 너를

 

-『꽃잠, 문화의힘, 2023.

 

감상 병꽃나무는 꽃 핀 모양이 병 모양을 닮았다고도 하는데 정확히는, 꽃 피기 직전의 꽃봉오리 모양이 병 모양을 연상케 한다. 물론 병 종류 따라 모양도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니 대충 그렇다는 뜻이긴 하다. 병꽃나무는 꽃의 색깔에 따라 흰병꽃나무와 붉은병꽃나무로 구별되고, 흰색, 분홍색,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삼색병꽃나무도 있다.

이 중에 시인은 흰병꽃나무를 소유하거나 그 꽃을 즐기고 있는 사람이다. 우연히 지인의 붉은병꽃나무의 꽃을 가까이 보고, 흰병꽃나무의 꽃과 구별되는 매혹에 대해서 찬탄의 말을 냈을 법하다. 지인 역시 붉은병꽃나무와 서로 눈을 맞추며 사랑과 위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애틋한 정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지인은 붉은병꽃나무를 시인에게 기꺼이 양도한다.

다정한 마음을 받은 시인은 혹시나 자기 안의 욕망이 밖으로 내비치지 않았는지 걱정한다. 붉은병꽃나무는 이쪽으로 오든 그쪽에 있든, 가까이 보든 멀리 보든 개의치 않고 일정한 존재의 모습을 띠고 있을 텐데, 굳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두려고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이다.

병꽃나무를 들이다는 선물의 의미도 떠올려보게 한다. 자신이 귀하게 생각하는 것을 같이 귀하게 생각해주는 마음이 선물이요, 자신에게 소중한 그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 자체도 이미 선물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앞으로도 병꽃나무 꽃을 마주하게 될 텐데, 혹자는 알아줄 이 없어도 혼자 좋아할 수 있으면 그것 또한 선물 같은 일 아니겠는가 하고 중얼거릴 것도 같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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