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희, 『호박 한 덩이 머리맡에 두고』, 학이사, 2023.
노정희 수필가의 요리 관련 에세이다. 요리법뿐만 아니라 해당 요리에 대한 이전의 기록을 살피며 역사적이고 민속학적인 자료도 알뜰히 소개한다.
작가는 약선설계사이기도 하다. 요리의 영양이나 효능을 살피며 어떻게 하면 요리를 통해 더 좋은 기운을 더 얻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유용한 지식이 많다. “더덕 요리에 고추장을 사용하는 것은 찬 성질에 뜨거운 성질을 넣어 조화를 맞춰주는 것이다. 잔뿌리가 많은 것은 말렸다가 물을 끓였다. 대추를 넣어서 끓이며 차로써 손색이 없다. 감기 기운이 있을 때는 생강을 넣어 끓이면 그만이다”라고 했다. 더덕의 효능을 취하면서도 개개인의 몸상태에 따라 고추장, 대추, 생강 등의 더운 성질의 음식으로 보완을 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굴 요리에 부추를 넣고, 배 요리에 후추와 꿀을 섞는 것도 같은 이치란다. “후추와 꿀은 배의 서늘한 성질을 잡아주고 촉촉함과 단맛을 전해준다”고 했다.
내게 부추는 정구지란 이름이 더 익숙한데 경상도 상주가 고향인 작가도 그런 모양이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 정구지 부침개에 땡초 두어 개를 썰어 넣으면, “땡초 맛에 호호거리며 눈물 한 방울 찔끔거리고 나면 어느새 우울한 기분이 싹 가신다. 습기로 인한 음의 기운을 정구지의 따뜻한 성질이 끌어올려 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겠지만 몸에 열이 자주 오르는 사람은, 있는 땡초도 빼고 먹는 게 좋겠다. 아니면, 부추와 땡초에서 이중으로 오른 열을 끄러 비를 얼마간 맞으면 될 거 같긴 하다. 이처럼 음식을 도움 되게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안내서로 이 책을 읽어도 좋겠다.
그렇다고 『호박 한 덩이 머리맡에 두고』가 일반 요리서라고 말하긴 어렵다. 요리된 음식 하나에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빼곡 차 있기 때문이다. 요리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는 이야기이다. 소개된 요리도 특별한 것이 아니라 고향집에서 흔히 먹던 것이 주를 이룬다. 고향이 이북인 아버지가 맛있게 먹었던 요리는 고추전이다. 요리법은 간단하다. “밀가루에 소금으로 간하여 반죽한다. 고추는 길이로 반 갈라서 씨가 들어있는 상태로 반죽을 얇게 입혀 튀기듯이 전을 부친다”는 식이다.
작가가 손꼽은 요리 중에 능이 미역국이 있다. 아버지가 버섯을 캐 오면 어머니는 몸을 푼 막내딸을 위해 미역국을 준비한다. “어머니는 말린 능이를 불려 가마솥에 국을 끓였다. 들기름을 두르고 능이와 미역을 넣어 볶다가 쌀뜨물을 부었다. 산모가 한 가지 국만 먹으면 질릴 수 있다고 이런저런 재료를 넣어 국을 끓여주었다”고 했으니 이어지는 그 다음 말이 짐작된다. “내 입에는 능이 미역국이 단연 최고였다”는.
그럼, 내게 최고의 음식은 뭘까, 잠깐 생각해보는 시늉을 하게 된다. (이동훈)
* 사진은 하승미 쌤 진행의 금요북토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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