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국현, 『강의실 밖으로 나온 영시1』, 우리시움, 2024.
저자는 영문학을 가르치며 시를 쓰는 사람이다. 저자가 월간 《우리시》‘영시해설’코너에 발표해온 것을 『강의실 밖으로 나온 영시』두 권으로 묶어냈다. 단순한 시 해석에 그치지 않고,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 주목할 만한 사건, 작가의 삶과 에피소드를 덧붙이고 시의 행간 그 이면 내용까지 짚어가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니 한 꼭지를 읽어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강의실 밖으로 나온 영시1』에 소개된 21편의 영시 중 저자가 애증 관계로 여기로 있는 매슈 아놀드(1822∼1888)의 「마가렛에게속편」을 본다. 교육자이기도 한 매슈 아놀드는 “문학비평과 공교육을 통해 사라진 ‘교양’을 회복하는 동시에 사회의 ‘속물근성’을 타파하는 데 관심”을 둔 인물이다. 저자는 속물근성을 없애고 비평에서 공평무사하고 사심 없는 태도를 강조하는 그의 뜻과 그의 시를 사랑하지만 아놀드가 생각하는 최상의 것인 교양도 상대성이 있을 수 있고 무엇보다 교양의 반대편에 노동계층의 무질서를 두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저자는 비판도 분명하지만 애초에 끌렸던 마음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여국현 시인의 안내에 따라 매슈 아놀드의 시 뒤편 3, 4연을 읽어본다.
Oh! then a longing like despair
Is to their farthest caverns sent;
For surely once, they feel, we were
Parts of a single continent!
Now round us spreads the watery plain
Oh might our marges meet again!
Who order'd, that their longing's fire
Should be, as soon as kindled, cool'd?
Who renders vain their deep desire?
A God, a God their severance ruled!
And bade betwixt their shores to be
The unplumb'd, salt, estranging sea.
오, 그러면 절망 같은 그리움이
섬의 가장 먼 동굴까지 번진다오.
예전에는 틀림없이, 섬들이 느끼듯, 우리가
한 대륙의 일부였으니!
지금 우리 주위엔 물의 평원이 펼쳐져 있다오.
아, 우리의 가장자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누가 명하였던가, 그들의 그리움의 불길이
불붙자마자 곧 식어버리도록?
누가 그들의 깊은 열망을 헛되게 하는가?
운명이, 운명이 그들의 단절을 명하였다네!
그들이ㅡㅡ 해안 사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짜디짠, 소외의 바다가 놓이도록 명하였다네.
고립된 섬도 애초엔 대륙의 일부였다는 비유가 절묘하다는 평과 함께 저자는 ‘절망 같은 그리움’이란 시어에 주목한다. 읽는 독자에 따라 ‘절망’에 방점을 찍기도 하고, ‘그리움’에 방점을 찍기도 할 것 같은데 저자는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을 말한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 앞에서 절망과 무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신분 등의 이유로 실제로 결혼을 기피했던 아놀드의 사연을 얹어서 “시의 화자도 현실의 아널드도 그녀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던 것에 대한 핑계를 운명 탓으로 돌리는 것 아닌가”하는 어쩌면 아놀드 스스로도 모르고 있을 내면 심리까지 읽어내면서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다.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를 잇는 셰이머스 히니(1939〜2013)에 대해선 「파기」란 작품을 통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화자의 아버지는 삽으로 땅을 파고 삽으로 감자를 캐는 사람이다. 자갈밭을 파는 것을 척박한 아일랜드 땅을 일구는 노동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화자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토탄을 캐는 모습으로 묘사되니 대를 이어 삽질하고 파기하는 모습이다. 또한 그 파기의 결실인 감자와 토탄은 아이랜드 사람들의 질곡의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긴다. 시의 마지막을 인용하면,
Between my finger and my thumb
The squat pen rests.
I’ll dig with it.
내 손가락과 엄지손가락 사이에는
몽당연필이 놓여 있다.
나는 그 연필로 파들어 가리라.
여기에 저자는 “삽을 들고 땅을 일구며 생존하기 위해, 살기 위해 치른 전쟁. 이제 그 아버지의 아들의 아들은 삽이 아니라 펜으로 하는 전쟁을 치르려 합니다. 삶이 전쟁이듯 글을 쓴다는 것, 삶을 기록한다는 것, 그 또한 전쟁처럼 치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치열하게 글쓰기 하는 자세는 저자 자신의 모습도 꼭 그러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선택하지 않은 길」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에 나섰으나 애초에 공부를 더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스스로 지켜 지금의 삶에 이른 것이다. 저자는 공부하는 데 진심으로 임하며 강의와 책으로 공부한 것을 나누는 데도 열심이다. 시 쓰고 번역하는 일도 겸하며, 근래 『강의실 밖으로 나온 영시 1,2』뿐만 아니라, 『강의실 밖으로 나온 영미소설』까지 출간하는 놀라운 힘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때의 놀라움은 책 권수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깊이 파고든 정성들에 대해서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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