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손심심 그림), 『한국인의 고유 신앙: 영등・수목・칠성』, 학이사, 2023.
- 저자는 소리꾼 김준호 쌤이다. 방송 출연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재담가이기도 하지만 그 재담의 바탕엔 민속학을 전공하면서 관련 공부를 계속해온 학자의 역량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이번 책은 영등 신앙, 수목 신앙, 칠성 신앙을 깊이 파고든 결실이다. 음력 2월의 비바람을 관장하는 영등할미의 존재는 제주 이어도가 뿌리로 작용하고 있음을 여러 문헌과 설화를 궁구해가면서 얘기한다. 이어도는 여인들이 사는 곳이란 전설도 있고 거꾸로 바닷일 나갔다가 죽은 남편들이 사는 곳이란 전설도 있다. 파랑도라 불리기도 했던 암초 섬을 실제 답사하여 1951년 이어도란 동판 표지를 한 사실도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을 기초로 대대로 구전하여 전하여 내려온 신화나 전설 속에는 실제 역사와 무관하다 할 수 없는 진실이 교묘하게 포장되어 있기도 했다”면서도 저자는 2만 년 전의 빙하기와 대해빙 시대를 거쳐 ‘이어’국이 바다에 잠기면서 두무악(제주)과 주변 섬나라를 형성하고 이어도만 간당간당하게 남았다는 학술적 내용도 들려준다.
저자가 옮겨 적은 <좀녀 노 젓는 소리>엔 “이엿말 하면 나 눈물 난다 이엿말은 말앙은 가라/ 강남을 가건 해남을 보라 이어도가 반이엥 한다 (이어도는 말만 해도 눈물이 난다 하지를 말아라/ 강남 가는 해남 길로 보면 이어도가 절반이더라)”란 구절이 나온다. 강남, 해남이란 지명에서 얼핏 떠오르는 노래는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1984)다. 알고 보니 <떠나가는 배>의 부제가 ‘이어도’다. ‘유레카!’까지는 아니더라도 흘려듣던 노랫말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깊게 하는 계기는 된 듯하다.
저자는 단군이나 황우양씨 신화와 관련되는 성주신의 내력을 따지며, “부조리와 불합리와 부정과 불행이 설치는 위태로운 인간의 터에서 그 잡귀와 잡신을 막아주는 믿음직한 성주신은 참으로 든든한 신격이었다. 이같이 소나무는 성주신의 집으로 살아서도 대접받고 죽어서도 대접받는 조상 나무였다.”고 했다. 수목 신앙과 성주 신앙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인데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로 안동 제비원(이천동 석불상)을 꼽는다. 이곳 제비원은 중생 구제를 위해 발 벗고 나선 미륵 사상과 제비 꼬리형의 길지를 내세우는 풍수지리 사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단다. 여기에 제비원에 떨어진 솔씨가 소나무가 되고, 소나무가 집의 재목이 되어 성주신이 들 수 있는 제반 조건이 마련되면서 성주풀이와 성주의 본향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주풀이에 등장하는 나무는 대부송(大夫松)인데 지금은 흔적을 더듬기 어렵다. 그 후손 나무가 있는 것인지 제비원을 지날 때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저자가 언급한 칠성 신앙은 북두칠성 별자리와 관련이 깊다. 불교와 만나서 사찰에 칠성각이 만들어지고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새벽마다 칠성 기도를 올렸고, 북두칠성 모양의 숟가락으로 밥을 먹었다. 저승이 편안하여지라고 무덤 뚜껑 바위에 북두칠성을 새겼고, 북두칠성의 운행원리를 본뜬 윷판으로 칠성신에게 길을 묻는 점을 치고” 했단다.
저자는 바위 구멍인 성혈에 기도 막대를 돌린 흔적을 더듬기도 하며 칠성 신앙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다. 저자의 글을 읽는 중에, 그동안 찾지 않았던 칠성바위를 찾았다. 칠성동 동네 이름의 유래가 된 바위 7기는 대구역 정문과 후문 사이의 옆길(지하철역 4번 출구)로 옮겨져 있었다. 청동기 시대 고인돌로 추정하지만 뒷받침 근거는 부족해 보인다. 1795년 경상감사 이태영이 북문 쪽에 있는 일곱 개의 돌을 모아 자신의 아들 이름을 돌에 새겼다고 하는데 『대구읍지』(1924년)에 관련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인 김준호 쌤이라면 더 파고드는 성의를 보일 것 같지만 나는 요기까지다. 그나마 저자의 책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이으며, 주변에 있으면서도 정작 그 존재나 존재 의의를 모르고 살았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을 갖는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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