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대전 충남 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심지, 2013.
대구 경북의 문인 예술가들의 삶을 조명했던 『씨 뿌린 사람들』(백기만, 1959)로 인해 현진건, 이상화, 이장희, 이육사, 오일도, 백신애, 박태원(작곡가), 김유영(영화감독), 이인성(화가), 김용조(화가)의 삶과 예술이 어떠했는지 그 세부까지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고 이후 더 이들에 관심을 갖는 계기도 된 걸로 이해하고 있다.
서울 중심의 중앙 활동에 가리어 자칫 소외되기 쉬운 지역의 문학예술 활동을 공부하고 답사하고 정리하는 일은 퍽 소중해 보인다. 이번에 읽은 『대전 충남 문학의 향기를 찾아서』도 그러하다. 지역의 땅을 딛고 향기를 맡으며 자란 씨앗은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예술이란 거목이 되어 풍성함을 드리울 것인데 그 흔적을 더듬어 보는 재미가 있다.
충남 금산 출신의 김현정 저자가 쓴 순서대로 작가를 일별하며 몇몇 장면을 메모해둔다.
*한용운(1879∼1944, 충남 홍성)
*신채호(1890∼1936, 대전. 8살 때 충북 청원으로 이사)
*이기영(1895∼1984. 충남 아산. 5살 때 천안으로 이사).
- 대표작인 장편소설 『고향』을 쓸 때 천안 성불사 요사채에서 얼마간 머물렀다고 함.
*심훈(1901∼1936, 서울)
- 중국 유학 시 신채호의 영향을 받고, 여운형과 가까이 지냄. 충남 당진으로 낙향한 뒤 여운형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일보>에서 학예부장을 하며, 신문연재소설 『영원한 미소』, 『직녀성』을 발표함. 잃어버린 담배물부리를 찾은 곳에 집을 마련해서 ‘필경사(筆耕舍)’로 이름 짓고 그곳에서 『상록수』 탈고함.
*신석초(1909〜1975, 충남 서천)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괴테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고 함.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바라춤」은 이색을 모신 문헌서원과 그 옆 봉서사를 다니며 바라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을 것으로 짐작됨. 뒤편 건지산성 일대는 백제부흥운동의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그 기슭에 신석초 시비가 있음.
*윤곤강(1911〜1949, 충남 서산. 이후 서울과 충남 당진을 오감.)
*정훈(1911〜1992, 충남 논산. 안성을 거쳐 대전에 정착.)
- 휘문고보 시절 정지용과 이병기의 영향을 받음. 1945년 《향토》, 1946년 《동백》, 1952년 《호서문학》등 문예지 창간을 주도함.
*한성기(1923〜1984, 함경남도 정평)
- 함흥사범학교 졸업 후 충남 당진 합덕중 발령. 대전사범학교 교사 부임.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를 쓰기 시작해서, 1952년 「역」으로 등단. 재혼 후 병으로 추풍령 기도원 생활. 영동, 조치원 거쳐 대전에서 ‘로터리 제과점’ 운영. 「둑길」 연작으로 둑길의 시인으로 불림.
*박용래(1925〜1980, 충남 논산)
- 강경상업학교 수석 졸업 후 서울과 대전의 조선은행 근무. 은행 사표 후 중학교 교사 생활 중 대전 오류동에 집을 장만하고 ‘청시사(靑柿舍)’라 이름함. 강경상업학교 2년 재학 때 누이의 죽음이 자신을 ‘방안 아이’로 만들었다고 함. 이 말의 출처는 박용래의 『우리 물빛 사랑이 풀꽃으로 피어나면』인데, 같은 책에서 둘째 딸 연이가 술회하는 장면을 다시 옮기면, “돈 세는 일이 역겨워 은행직을 그만두시고, 등록금을 독촉하기가 안쓰러워 결국 교직을 떠나셨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어느 곳에나 얽매이기를 싫어하셨던 자유분방함과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하고 여린 심정으로, 어쩌면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시인으로 운명지워져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신동엽(1930〜1969, 충남 부여)
- 전주사범학교 졸업. 아내 인병선은 신동엽이 서울 헌책방에서 일하다가 만남. 인병선의 아버지는 『조선 농업경제론』을 썼던 농촌경제학자 인정식의 외동딸임. 인병선은 장시 「금강」에 등장하는 이진아의 실제 모델이며 시대적 질곡에 희생되는 장인의 모습도 시에 투영됨. 「내 마음의 고향」 등 경(憬)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시는 모두 인병선을 모델로 함.
*김관식(1934〜1970, 충남 논산)
- 강경상업학교(현재 강상고등학교)에 동문인 박용래와 함께 시비가 있음. 알콜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들 딸에게 쓴 편지에 술이란 백해무익이란 말과 함께 “어떤 가난 속에서도 뚫고 나가야 돼. 아버지 술 병 때문에 어린 가슴에 쓰라린 추억을 남겨 가슴 아프다. 아버지는 책을 사랑했어. 한권 한권 읽어 넘기는 너희들의 모습이 마음 든든해. 책을 깨끗이 읽고 헌 책고 깨끗이 잘 정돈하고 항상 책방에서 책을 벗 삼아라.”(1962.2.19.)라고 말함. 뒷날 「병상록」에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시가 발표됨.
*이문구(1941〜2003, 충남 보령)
- 6.25 직후 아버지, 둘째, 셋째 형 좌익 혐의로 살해됨. 좌익 혐의를 받던 이호우 시조시인의 구명활동을 보고 문학에 관심. 서라벌 예술대 입학 후 김동리의 양아들로 불림. 실제 부모자식 같은 존재로 서로를 대함. 진보단체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민족문학작가회의->한국작가회의)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지만 보수 쪽 김동리에 대한 공격이 있자 단체를 탈퇴하기도 함. 임종 후 한국문단 사상 처음으로 4대 문학단체(문인협회, 민족문학작가회의, 펜클럽, 소설가협회) 합동 문인장으로 장례식이 거행됨.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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