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金東煥·1901∼?, 함경북도 경성)
아명은 삼룡(三龍). 호는 파인(巴人). 창씨명은 백산청수(白山靑水). 1901년 9월 21일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파인이 어렸을 때 러시아로 장사를 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홀로 갖은 고생을 하면 6형제를 공부시켰다. 경성보통학교를 졸업 후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 진학을 포기했으나, 호빵 장수 등을 하며 16세인 1916년 서울중동중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일본 토오요오대학 영문과에 진학했으나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1924년 처녀시집 '국경의 밤'을 발간해서 당시의 신경향파적 시단풍조와는 이질적인 향토색 짙은 민족정서의 시풍을 보여 주었다. 특히 여기 수록된 대표작 '국경의 밤'은 최초로 서사시의 형식을 갖춘 작품으로 평가되어 당시의 시단에 상당한 반응을 일으켰다.
첫 시집 발표 후 한때 조선일보, 동아일보 기자로 활약했다. 그는 순회기자로 함북지방을 돌며 일본인들이 이 지역 조선인들의 토지·어장을 탈취한 실태를 파헤쳤다.‘원산 총파업사태’를 현지취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29년부터 종합잡지 <삼천리>와 순문예지<삼천리문학>을 주재하면서 경영에 전력을 기울였으나 경영난으로 폐간, 해방 후 다시 <삼천리>를 복간하는 한편 시론에 손을 댔다.
김동환은 중일전쟁을 겪으며 황도사상을 노래하고 징병을 강요하는 친일파로 변절하고 만다. 친일잡지인 '삼천리'의 사장으로서 '임전대책협의회' 창설했다. '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와 통합하여 '조선임전보국단' 을 재출범시키고 상무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조선문인협회' 발기인, '조선문인보국회' 상임이사,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대화동맹' 위원 등을 지내면서 일제말기 친일대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부인 최정희를 내세워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결성하기도 했다. '권군 취천명', '적국항복 밧고지고', '1천병사(兵士)의 삼(森)', '고란사에서', '미영장송곡'등 여러 친일 작품을 남겼다.
해방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반민특위에 자수한 김동환은 재판에서 공민권 정지 5년을 선고받고 한국전쟁때 납북됐다. 그후 생사는 알려지지 않고, 부인의 헌법소원으로 55년 사망신고가 되었다가 아들 김영식씨의 취소청구로 현재는 행방불명 상태로 되어있다.
아내 최정희에 이어 딸 김지원 김채원 남매가 소설가로 활약하고 있다.
"봄이 오면", "산너머 남촌에는" 등 30여개의 시가 40여명의 작곡가의 손을 거쳐 노래로 만들어지는 등 김동환의 시는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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