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환(1918-?, 충북 보은)
오장환은 휘문고문 시절 정지용을 만나 사제지간의 연을 맺었다. 휘문고보를 중퇴하고 도쿄 메이지 대학 역시 중퇴로 끝냈다. 곧바로 귀국한 그는 종로 관훈동에 '남만서점'이라는 책방을 열고 문인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1940년 7월에 쓴 <팔등잡문>에 "오늘도 명치정엘 나와 당구를 하며 콩가루 섞인 커피를 마시며 어떠면 지방 문청(文靑)이나 올라와서 어떻게 인사할 기회를 얻어 가지고 맥주나 마실까 맥주나 마실까…" 한 것을 보면, 남만서점 경영은 겨우 2년 남짓으로 끝나고 이내 전형적인 식민지의 룸펜으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짐작된다.
1942년 제국주의의 끝 무렵 서울의 궁핍화 현상이 절정에 달했다. 그런 가운데도 오장환은 술자리를 마련하는 뛰어난 재주꾼이었다. 그는 술이나 밥이 나올 데를 찾는 데는 귀신이었다. 그는 서정주·이봉구 등 신진문인들을 이끌고 문학청년을 외아들로 둔 토건업자를 찾아가는가 하면, 사설병원의 약장을 열어 알코올에다 물을 타 술 대용으로 마시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종로나 본정통이 맥주집 주인들과도 교분이 두터움은 물론 그곳의 웨이터들, 남자 접대부인 '오동갈보'들과도 형님 동생하고 지내는 사이여서 맥주 한 병 값을 주고도 두세 병을 주인 몰래 마실 수 있었다.
오장환은 하는 일도 스마트해서, 서정주·이용악·이봉구와 바에라도 들어설 양이면 여급들이 떼거리로 달려와 팔과 가슴에 매달렸다. 술집 주인들도 그를 좋아해서 외상술을 즐겁게 내었다. 자연스럽게 오장환 패거리로 불릴 만큼, 한 무리 가난한 시인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고, 오장환은 대장 노릇을 했다.
해방 후 그는 혁명시인으로 바뀐다. <병든 서울>에서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았다/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씰개/ 내 눈깔을 뽑아 버리랴, 내 씰개를 잡어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오장환을 월북 후 시작활동을 계속하다가 50년대 초엽 신장결핵 치료를 위해 모스크바로 갔다가 거기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래는 오장환 문학관(보은 소재)에 소개된 글이다.
[ 오장환은 1918년 아버지 오학근과 어머니 한학수 사이에서 4남 4녀중 3남으로 태어났다. 유년시절의 오장환은 말이 없고 조요한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보이나 대신 귀염성 있고 진실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회인 공립보통학교 입학, 안성 공립보통학교로 전학하여 그곳에서 졸업했다
1931년 4월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오장환은 이곳에서 정지용 시인을 만나 시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문예반 활동을 하며《휘문》이라는 교지를 만드는 일에 참여한다. 1933년 2월 22일에 발간된 《휘문》임시호에는 오장환의 첫 작품인 「아침」과 「화염」이라는 두 편의 시가 실려있다. 이후 오장환은 《시인부락》,《낭만》,《자오선》등의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이 시기에 발표한 시집「성벽」과 「헌사」를 통하여 ‘시단의 새로운 왕이 나왔다’는 찬사를 듣게 된다.
병상에서 해방을 맞이한 오장환은「병든서울」을 통하여 해방의 기쁨을 감격적으로 노래했다. 「병든서울」은 ‘해방기념조선문학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등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또한 시「석탑의 노래」는 1947년 중학교 5ㆍ6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다. 오장환은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리던 시기에 전국을 돌며 몸을 아끼지 않는 활발한 문화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과 테러가 자행되면서 몸을 심하게 다치고 치료를 위해 북으로 가게 된다. 이후 오장환은 남포와 모스크바에서 지병을 치료하며 소련기행시집 「붉은 기」를 마지막으로 발표하고 한국전쟁 중에 사망하였다.
1988년, 광복 후 40여 년간 논의조차 불가능했던 월북문인에 대한 해금조치가 이루어 졌다. 그 뒤부터 오장환 문학세계에 대한 연구논문을 비롯하여 전집, 평론, 시집 등이 발간되었으며, 초창기의 시와 동시, 장편시 등의 자료들이 속속들이 발견되었다.
1996년에는 제1회 ‘오장환문학제’가 개최되어 현재까지 매년 기념행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2005년 오장환의 생가복원 및 문학관 건립을 위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충북 보은군 회인면 회인로5길 12 (중앙리 140) 일원에 오장환 문학관이 건립되어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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