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일화(ㅈ-ㅎ)

장정일 (1962- , 대구)

톰소여와허크 2010. 8. 30. 19:45

장정일 (1962- , 대구)

 

남재일 기자가 장정일에 대해 쓴  내용이다.

 [내가 처음 장정일을 만났을 때 그는 은평구의 한 동네에 방을 얻어 살고 있었다. 나는 그 집에 가보지 않았다. 주로 신촌에서 만나 소주를 마시거나 락카페에서 음악을 들었다. 그는 사람 많은 행사와 모임을 피했다. 이 때 그에게서 받은 인상은 약간 불안하고 늘 진지하고, 그리고 강한 공격적 의지로 생활을 조직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평소에 거의 농담을 하지 않았다 술은 소주를 좋아했는데 마시는 속도가 물 마시듯 했다 술이 세서 잘 취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본인이 '갔다'고 느끼면 소리없이 사라지는 버릇이 있었다.

 한 번은 이대 앞의 '올로올로'에서 2차로 맥주를 마시다 화장실을 갔었는데 소식이 없어 한참이나 찾아다닌 적이 있다. 나중에야 나를 찾으러 나온 김완준으로부터 '자주 그런다'는 얘길 듣게 되었는데, 사실 이 때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한참 후에야 그런 버릇이 자신을 지키고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장정일 특유의 직설법임을 이해하게 됐다.

 나는 장정일이 지갑을 갖고 다니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내가 못 본 것인지 아예 지갑이 없는 것인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늘 만 원짜리 몇 장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물론 신용카드는 없다 그러니 하루 지출할 최대한의 액수가 정해져 있는 셈이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간혹 비싼 술자리로 이어지면 그는 계산대 앞에 그냥 서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감옥에서 나온 한참 뒤의 일이다. 장정일은 내게 자신의 변호를 맡은 강금실 변호사에게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강변호사와 저녁을 먹기 위해 대구에서 상경한 장정일은 신촌의 여관에 숙소를 정하고 약속장소인 강남의 고급음식점에 나타났는데, 그때 그는 만 원짜리 50장을 종이에 싸서 들고 왔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반드시 이 돈을 다 써야 합니데이." 나중에 강변호사가 만류하는 바람에 그는 그 돈을 결국은 다 쓰지 못하고 돌아갔는데, 나는 그때만큼 장정일이 거액의 돈을 소지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장정일은 술 마시면 자주 필름이 끊기는 버릇이 있다. "나는 밥을 먹는 데 숟가락과 젓가락 일습이 왜 필요한지 항상 의아해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이 취한 상태에서 집에 돌아와 밤참을 먹고 난 다음날, 내 열 손가락은 김칫물이 들어 뻘개져 있고 손톱 밑은 짠물이 들어 있다. 밥과 반찬을 손으로 집어먹은 것이다. 그래서 나만 이럴 게 아니라 언젠가 근사한 만찬을 준비해 놓고 친구들을 불러 손으로 집어먹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고 글로 적고 있다.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 행복한 책읽기, 200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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