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일화(ㅈ-ㅎ)

조태일(1941-1999, 전남 곡성)

톰소여와허크 2010. 8. 30. 19:46

조태일(1941-1999, 전남 곡성)

 

아래 내용은 친구 박석무가 고 조태일을 회상한 내용이다.

[96년 이후 그가 세상을 떠나던 한 달 전까지 우리는 주마다 산에 올랐다. 산에서도 술을 마셨지만 하산하고는 반드시 술을 마시게 되어 있었다.

그가 그렇게 좋아하던 생맥주, 생맥주로 기분이 약간 거나해지면 이차, 삼차를 가기 마련이었다. 99년 초봄의 일이었다. 나의 등산화의 밑이 달아져 있었는데, 그는 여러 차례 새 등산화로 바꾸라고 했었다. 새 등산화를 사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그걸 실현하지 못하고 있던 차인데, 어느날 집으로 전화가 왔었다. 집 주소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새 책이 나와 부치려나 했더니, 어느 날 퇴근해 보니 그가 보낸 소포가 있었다. 펴보니 새 등산화가 아닌가. 그처럼 게으르고 굼뜬 사람이 어떻게 그걸 사서 포장하여 소포로 우송까지 하는 일을 한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고마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아마 99년 3월쯤으로 기억되는데, 그는 그 때 이후 주말 등산에 자주 나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피로를 느끼면서 등산을 힘들게 여겼나보다. 그후 몇 개월이 못되어 그는 병석에 누웠고 누운지 두 달도 못되어 끝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으니,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그가 내게 보내준 우정의 선물인 등산화 한 컬레 뿐이다

 시인 이동순은 아래와 같이 조태일을 말한다.

[시인은 항시 술을 벗하며 살았다. 병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술을 즐겼다고 한다. 술과 관련된 조태일 시인의 일화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반가운 벗들과 술집에 가도 맥주를 꼭 한 병씩만 주문하였고, 그렇게 한 병 한 병 시키며 밤을 꼬박 새는 경우가 많았다고 벗들은 회고한다. 술을 마시되 여색에 무심하였고, 때론 비분강개가 지나쳐서 벗들이 놀라 달아나는 일도 있는데, 이것은 아무래도 과정 섞인 신화가 아닐까 한다.

 술꾼이 병이 나서 술을 마실 처지가 되지 못할 때, 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술을 권하면 고개는 도리질하면서도 손은 자신도 모르게 술잔을 향해 내뻗는다는 '요두출수(搖頭出手) 설화', 권하는 술을 한편으론 사양하면서도 강렬한 눈빛은 오히려 술잔이 뚫어질 듯 쏘아보고 있다는 '양주목사(讓酒目射) 설화' 등의 재담을 쾌활하게 아야기하여 주변의 여러 벗들을 폭소의 도가니로 휘몰아 넣던 시인 조태일!

 몹시도 심심해진 바커스 신이 자신과 대작할 수 있는 상대를 지상에서 고르다가 조태일 시인을 발견하고 그와 더불어 한잔하기 위해 아늑한 하늘나라의 술집으로 시인을 몰래 빼돌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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