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 시각 : 2004.04.10 18:45:39
<송환>은 비전향 장기수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500개의 테이프를 바탕으로 만들었으며, 십 년 이상의 촬영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영화의 끝 부분에 앞 머리카락이 썰렁한 김동원 감독이 비디오카메라 앞에 수줍게 웃는 모습이 나온다. 그 선량한 웃음 뒤에 일을 매조지하는 그의 열정이 숨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생각과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 평 남짓한 독방에서 삼 사십 년을 견딘 사람들. 우린 그들을 비전향 장기수라 부른다. 적대국을 눈앞에 둔 분단국가의 특수성을 고려할지라도 한 인간이 가진 생각의 대가로는 너무나 혹독한 형벌이다. 국가 안보라는 이름 하에 행사된 부당하고도 지나친 폭력이다.
어떤 생각과 표현이 다수의 의견이나 공익과 배치된다고 하면 그러한 의견은 존중받지 못할 것이고,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다수를 비판하는 소수의 의견이 다수를 더욱 긴장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생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는 없다. 한 쪽이 어떤 생각을 강요하거나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사회가 표방하는 이념을 송두리째 부정한다 해도, 이를 충분히 경청하고 서로 논쟁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나는 사회주의자와 자본주의자, 그밖에 수많은 무슨 주의자들이 제각기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다양한 목소리가 허용되는 사회, 그 곳에서 어느 것이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지, 이념과 실제가 왜 다른지에 대해서 뜨겁게 이야기해야 한다.
장기수를 끝까지 버티게 한 힘에 대한 내레이션이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이념에 대한 신념이 아니라, 폭력에 무너지지 않고자 했던 자존심이었을 거라고 그랬다.
이제 선거철이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끼리 당을 만들고, 그 당이 국민에게 뽑아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밥에 그 나물보다는 젓가락 갈 곳이 많은 게 좋지 않을까. 장기수는 북으로 갔지만, 북으로 간 그들이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 쪽 역시 그 나물에 그 밥 아닌가. 다양하지 않다는 건 식욕을 죽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