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 시각 : 2004.05.11 23:16:21
동네 이발사가 어쩌다가 대통령 이발사가 되었다. 가족이 청와대 만찬에 초대되기도 했다. 이발사 아들 녀석이 대통령 아들과 몸싸움을 하게 된다. 이발사는 아들의 뺨을 세차게 후려갈기며, 높으신 분들에게 굽신거린다. 그 덕에 다리 몇 대 걷어차이는 정도로 청와대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왕의 자식과 이발사의 자식이 잘잘못을 가린다는 게 가당찮기나 한가, 하고 이발사는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버지로서 상처받은 자존심을 조심스럽게 누르면서.
그러다가 정말 큰일이 터졌다. 아이가 간첩 혐의로 국가 정보원에 넘겨진 것이다. 아이의 잘못은 설사를 했다는 점이다. 여기엔 만화 같은 이유가 있다. 무장공비가 설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접선한 남한의 간첩도 설사를 할 것이다. 그러니 설사하는 사람을 잡아서 조사하면 간첩단을 송두리째 밝혀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일들이 아주 없었다고 떠들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는 전기 고문의 후유증으로 양다리를 못 쓰게 되면서, 부모 가슴에 못질을 한다. 이발사는 처음으로 권력을 향해서 욕을 올리고 춤을 뱉는다. 이발사의 눈물겨운 노력과 도사의 도움으로 아이는 기적적으로 몸을 회복하지만, 영화 속 이야기이다. 현실 속 피해자는 지금도 고통을 받거나, 잊혀지거나 했을 것이다.
칠십 년대가 가고 대통령이 갈리었다. 그에게 또 대통령 이발사 제의가 들어왔다. 어떻게 했을까, 영화를 보기 바란다.
민주주의란 말할 수 있는 자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젊은 시인의 말이 생각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