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남한산성>, 학고재, 2007.
적에게 쫓겨 남한산성으로 옮겨온 조정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앞에 두고 큰 고민에 빠졌다. 최명길 등은 고개 숙여 목숨을 구하는 길을 말했다. 김상헌 등은 끝까지 싸워 자존심과 명분을 지키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둘 다 삶의 길이라고 역설한다.
삶을 구걸하는 데서 삶이 오지 않을 수 있으며, 죽음을 무릅쓰는 데에서 삶이 올 수도 있다는 김상헌의 말은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는 설득력을 잃고 만다. 삶은 스스로 구할 수 있을 때 구해야 한다는 최명길의 논리는 남한산성에 깃든 병사와 백성들의 뜻이기도 했을 것이다.
충과 의와 죽음을 말하면서 전쟁을 불사하자던 이가 전선의 맨 뒤에 있다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지만, 전쟁은 늘 그런 식이다. 양반들이 불러들인 전쟁에 먼저 희생되는 것도 힘없는 백성 쪽이다. 이들에겐 거창한 명분보다 당장의 추위와 배고픔을 면하는 일이 더 절실하다. 충은 성은을 입어야 나오는 것이지, 명령으로 서는 것은 아니다. 왕 역시 지는 싸움에 자신과 조정을 던질 수 없어서 살아서 치욕을 감당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 옛날 남한산성에서 ‘어떻게 죽느냐’,와 ‘어떻게 사느냐’는 말씀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무성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이든 자신과 뒷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 남아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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