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정자와 연못이 있는 풍경

톰소여와허크 2011. 11. 13. 11:33

정자와 연못이 있는 풍경 / 이동훈

 

1

늙은 왕버들 잎잎이
연못 위를 점묘로 그려낼 때
고인은 예까지 오지 못하고
오고 싶다는 절필만 편액으로 걸린
거북 위 청암정*
바깥으로만 떠돌던 그대도
돌다리 건너와  
애써 무연했을 거나

2

다산 들녘에 내린 눈송이는
요절 시인이 보낸 부호일까
살얼음 낀 연못 위로
기역 자로 굽은 향나무처럼
귀래정* 난간에 목 빼고 앉아
그대 생각 골똘하니
발밑까지 어두워진 다음에야
먼 데 꿩 울음소리 들리네

3

멸문을 면한 곡절을
묘골에 와서 듣는 사이
지난 사연일랑 아랑곳없이
연꽃과 배롱나무 다투어 붉더니
어느새 저녁놀로 옮겨 붙네
더위 잊은 하엽정* 누마루에
궂긴 마음의 주름 펴듯
쏟아지는 달빛을
이 밤, 그대도 볼 것인가

 4

그대에게 닿기 위해
단풍 따라 내려가는 길
길에서 길로 드니
은행잎 쓸려 드는 어변당* 연못
고기밥 주던 옛 주인의 마음으로
연노랑 목련 잎사귀에
순하게 쓴 연서를
무안천에 속달로 부칠 거나

*청암정- 봉화군 유곡리(닭실마을) 소재로 권벌이 지은 정자.
            편액 ‘靑巖水石(청암수석)’을 보내고 허목은 운명함.
*귀래정- 경주 강동면 다산리 소재로 여강이씨의 글방.
            29세로 요절한 이경록 시인이 이 마을 출신임.
*하엽정- 대구 달성군 묘리 소재로 참변을 피한 박팽년의 후손이 지음.
*어변당- 밀양 무안면 연상리 소재로 박곤이 지음.
            연못에 기르던 물고기가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음.


봉화 청암정 돌다리

 

경주 귀래정

 

대구 하엽정

 

밀양 어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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