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새이(喪輿)집 / 상희구

톰소여와허크 2013. 4. 7. 19:56

새이(喪輿)집 / 상희구

 

 

   아이구 무섭어라!

   한 동네 사는 신태랑, 그단에 배루고 배루던 저 건너 마실, 안티골에 숨어 있는 새이(喪輿)집을 염탐키로 작정을 했다.

 

   초지역이 이역할 때쭘 해서 질을 나서는데, 안티골 새이집은 건너 지실마을 끝타아, 막은안창집 옆푸라다 배껕마당을 가로질러, 호무래이로 돌아서 야산을 올라가마, 방고개 만데이 지나서 쪼만한 산삐얄 못 미쳐 비탈, 위진 곳에 살찌이맹쿠로 숨었는기라. 둣 뉨이 이망빼기에 땀을 팥죽겉치 흘리면서 사부재기 손을 뿓잡고 새이집을 가망가망 내리다보는데, 엄마야! 고만 새이집 한 쭉 모티가 찌불텅하기 니리앉은 겉은 기 아모래도 그 안에 구신이 들앉은 갑드라, 놀란 달구새끼

   횃대줄똥을 싸듯이 줄행낭을 놓는데, 마첨 하눌을 올리다보이끼네, 핑소에 세숫대야만 하던 허옇던 보룸달도 따라 식겁을 했는지, 낯짹이 왼통 쪼막손만 한 기, 포리쪽쪽해졌드마는

 

* 새이집: 옛날 상엿집은 대개 마을에서 좀 떨어진, 사람 눈에 잘 뜨이지 않는 산비탈 외진 곳에 있었다.

* 그단에: 그동안에

* 배루고: 벼르고

* 안티골: 안티는 산모의 태(胎)를 말한다.

* 초지역 : 초저녁

* 이역할 때 : 이슥할 때

* 질을 : 길을

* 끝타아 : 끝에. 타아는 별 의미가 없다. ‘타아’와 같은 말은 접미어로서 별 의미는 없지만 언어와 언어 사이의 흐름을 매끄럽게 한다던가, 토속 母語의 맛깔스런 억양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도 할 수 있다.

* 막은안창집 : 막혀 있는 안쪽에 있는 집. 시골마을에, 마을이 끝나는 곳에는 대개 산이 가로막혀 있는데 바로 그 산 아래 있는 집. 그러니까 마을의 제일 끝쪽에 있는 집을 ‘막은안창집’이라고 한다.

* 옆푸라 : 옆으로. 푸라는 별 의미가 없다.

* 배껕마당 : 주로 공용으로 쓰이는 바깥에 있는 마당

* 호무래이 : 곡선으로 휘어진 길

* 방고개 만데이 : 방고개는 半고개, 만데이는 꼭대기를 말한다.

* 위진 곳 : 외딴 곳

* 살찌이맹쿠로 : 고양이처럼

* 둣 뉨이 : 두 놈이

* 사부재기 : 조용히

* 찌불텅하기 : 구부러져 기울어진 모양

* 니리앉은 : 내려앉은

* 한 기 : 한 것이

* 포리쪽쪽한 : 포르스럼한

 

- 『대구』, 황글알, 2012.

 

 

- 대구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던 시인이 대구를 소재로 해서 연작시를 내놓았다. 이 시도 대구에 대한 연작시 중의 하나다. 지명과 풍물, 인물과 언어 등을 개인사와 같이 얽어서 서정성을 보여 주었으며, 한 시대를 증거하는 기록물로서의 가치도 있다고 하겠다.

   그리 길지 않은 이 시도 대구 토박이말의 세례가 대단하다. 타 지역 사람과 표준어 세대에겐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내용은 소싯적에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친근하면서도 동화적인 사건이다. 폐가로, 동굴로, 공동묘지로 떠나는 모험은 아이를 설레게 한다. 상상이 무섬증을 키우고 모험의 재미를 배가시키기도 할 텐데 상엿집을 찾아 간 두 아이가 그랬을 것이다.

   행 끝에 놓인, 또 다음 행으로 자연스레 이어지기도 하는 “놀란 달구새끼”란 표현이 감칠맛이 난다. 달구새끼(닭)는 두 아이를 보고 놀랐겠지만, 긴장한 아이들도 “놀란 달구새끼” 얼굴이 되었을 것이 뻔하다.

   요즘 시골엔 폐가가 넘쳐나지만 모험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없다. 도시 아이들은 텔레비전과 게임을 통해 모험을 즐기지만 그런 것이 자기 삶과 무관한 줄 빨리 알아간다.

   귀신을 보고 달구새끼도 보름달도 아이도 같이 펄쩍 뛰거나 하얘지는 추억을 지금의 아이에게 선물 못하는 게 참으로 유감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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