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나목

톰소여와허크 2013. 4. 10. 14:51

 

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 1962.

 

박완서, <나목>, 세계사.

 

- 지하철로 오가며 책을 읽었다. 출퇴근 시간이 길어져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나목>은 박완서 선생의 데뷔작이다. 박수근 화백의 유작전에서 ‘나무와 여인’을 보고 무언가 얘기할 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박수근과 박완서. 전란 중의 PX 초상화부에 일하며 생계를 이어야 했던 화가와 그 화가들에게 미군 손님을 연결해 주어야 했던 아가씨와의 만남은 실제 경험에 기초한 것이다. 여기에 작가는 허구와 상상력을 보태서 전쟁 전후의 쓸쓸한 풍경과 내면의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폭격으로 두 아들을 잃은 소설 속 어머니는 살아도 죽은 몸이나 다름없다. 김칫국으로 연명할 뿐 살아남은 딸을 위해서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상처를 이해하면서도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하는 딸의 심정이 주위 인물과 얽히면서 한 시대의 아픔으로 전해 온다.

  이파리 하나 없는, 회색으로 덧칠한 고목 그림에서 아가씨는 화가의 황량하고도 고통스런 내면을 보았지만, 그건 사실 자신의 상처를 확인하는 것일 테다. 소설의 말미에는 ‘나무와 여인’에 대한 인상을 언급하며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며 다가올 날의 희망에 대해서 내비친다. 책을 덮고 화가의 그림을 한참 바라본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