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영 작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anyoung911?Redirect=Log&logNo=20186392063)
반곡지에서 / 이동훈
밤나무에 옷을 걸어 두고
원효를 낳았다는 터, 제석사를 삼각형 꼭지에 두면
변의 끝점에 설총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반룡사가 있고
맞은편 끝점에 원효의 본가 터, 초개사가 있다.
그 초개사 가는 길에 반곡지* 있으니
어쩌면 원효가 여기 앉아
세속의 사랑과 인연에 도리머리하다가 떠났을 테고
아버지 흔적을 찾아온 설총이
더워진 가슴을 산바람에 식힌 후에야 일어섰을 테다.
원효와 설총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제 그 자리에 왕버들이 드레드레 앉아 있다.
뿌리에 가까운 밑동은
굵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틀려서 주름이 깊다.
추위로 깡깡 얼어붙은 날에도
가물어 바싹 말라붙은 날에도
뿌리 끝, 저 아래의 물기를 악착같이 끌어당긴
그간의 고투가 몸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도 바로서지 못한 나뭇가지 하나는
아래로 처져 수면에 고개를 박고 있는데
애처로운 마음도 잠시
반곡지가 젖꼭지 되어 수유하는 풍경인 줄 깨친다.
그래, 마음먹기에 달린 거라고
원효에게 그 아들에게 그 아들의 아들들에게
젖 물리는 반곡지에서
한입 맛있게 먹고 새털구름이 간다.
*반곡지: 경북 경산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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