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꽃마중 / 임채우

톰소여와허크 2013. 12. 22. 06:45

꽃마중 / 임채우

 

 

  바이칼호 대륙성 고기압이 위세를 부리던 설 연휴 지나자 햇살이 녹녹하고 푸짐한 게 봄도 머지않다. 허리병이 도져 설을 누워서 쇠었다는 지기의 내방이 하도 반갑다.

  올해도 기어이 봄은 올 것이고 미리 예약을 해두세. 그러세, 올해도 꽃마중 가세. 아랫녘으로 내려가 내 살던 고향 들러 취운정에 올라 일배하고, 뒷길 관공도로 넘어 구례땅으로 산수유 구경가세. 온 세상이 노랗게 부황이 들어 산수유 하나하나 점고하려면 차라리 하늘의 은하수를 헤아리시지. 거기서 거년 여정대로 봄물 넘실대는 섬진강을 타고 올라 압록산장으로 가세. 참게탕에 은어 한 접시 튀겨 놓으면 봄맛이 입가에 자르르 세상천지 매화무덤에 앉아 소주잔 기울이는 이 흥취를 그 누가 알까. 이 산 저 산 매화 비치는 너울이 너무 좋아 흥에 겨워 가정역 앉은뱅이다리 난간 위에서 한 곡조 뽑아도 좋고, 낮게낮게 남실대는 강물에 썩은 마음을 씻어도 좋고, 이번에도 산빛 깨치는 색소폰 한 곡조 부탁함세. 사실 말이지 우리가 자발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지남철 같은 것이 끄집어 당기지 않는가.

 

- 『오이도』, 도서출판 움, 2013.

 

* 병을 앓던 “지기의 내방이 하도 반갑다”는 말부터 시인은 이미 그네를 탄다. 마음은 계절을 당겨 봄에 가 있는 것이다. 오랜 지기의 쾌차가 바로 꽃 소식인 게다.

  시인의 고향 스케치가 하도 그림 같아서 일까, 머릿속에 그림 두어 점이 연상된다.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그 하나다. 병으로 누운 평생지기를 방문한 뒤 비가 그친 산의 모습을 그렸다고 하는데 안개가 쏠려가는 가운데 외딴집에 기를 불어넣듯 소나무와 봉우리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또 하나의 그림은 전기의 ‘매화초옥도’이다. 사방이 눈인데 혼자 있는 친구를 위해 누군가 거문고를 들고 산속의 집을 찾아가는 그림이다. 때마침 눈송이처럼, 폭죽처럼 매화가 피어 있어 오감이 즐겁다.

  시인이 그린 그림은 몸이 아팠던 친구 걱정을 덜면서 ‘매화초옥도’그 이후의 풍경에 가까워 보인다. 문득, 도시에 살면서 마음이 다친 사람을 이 풍경 속으로 초대하면 어떨까 싶다. “이 산 저 산 매화 비치는 너울이 너무 좋아” 잠깐이나마 시름을 놓을 것이고, “참게탕에 은어 한 접시”에 원기를 회복하게 되지 않을까.(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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