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겨릅나무,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hssn2710?Redirect=Log&logNo=140182356005
송과선, 잠 / 조용미
푸른 파장의 빛은 질색입니다 암흑이 좋아요
우울증과 불면증을 치료해드릴까요
우울과 멀어지고 잠을 잘 자야 한다는 뻔한 말은 필요 없습니다
나와 친밀해지면 산겨릅나무 녹색 수피에 새겨진 촘촘한 흰색 세로줄무늬처럼 우주적 도덕력이 생성되지요
건기와 우기가 되풀이되는 생,
환절기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잠을 충분히 자두어야 합니다
우주적 도덕력은 바로 잠에서 생겨난다고 믿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모든 병을 일으키는 하나의 병, 모든 미혹이 자리 잡도록 만드는 하나의 뿌리는 바로 의심과 수면 부족입니다
혹은 권태일지도 모르겠어요
어둠에서 모든 것이 나오지요 어둠은
우리 마음의 뿌리입니다
암흑과 어둠에 대해 확연한 앎을 가지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잠을 푹 자고 나면 모든 것이 조금은 선명해지지 않나요
그게 바로 어둠의 힘입니다
눈을 감고 눈자위를 꾹 눌러봐요 빙글빙글 우주의 별들이 떠다니는 걸 보세요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는 별의 운행입니다
몸과 마음이 모퉁이를 세게 돌다 부딪쳐 머리가 깨어지는 사고가 난 자리를 잘 살펴보세요
오늘도 포근하고 단정한 잠자리와 슬픔이 소량 필요합니다
- 『기억의 행성』, 문학과지성사, 2011.
* 송과선은 솔방울처럼 생긴 내분비샘(솔방울샘)이다.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제3의 눈’이란 별칭이 있으며, 빛의 양이 적은 밤이면 멜라토닌을 집중적으로 생성하여 숙면을 취하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
불면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멜라토닌 감소와 관련이 있을 텐데, 전자파로 빛을 대신하고 전깃불로 어둠을 몰아낸 생활 습관이 문제를 키운 거라고 볼 수 있다. “어둠의 힘”을 무시한 대가를 비싸게 치른 것이다.
시인이 말하는“우주적 도덕력”은 어둠을 수용하고 잠을 충분히 자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자세로 보인다. 그것은 병든 몸과 상처 받은 마음을 치료하는 데도 그 힘이 두루 미칠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우주적 도덕력”을 나무 수피의 세로줄무늬 같은 것이라고 했을까. 죽죽 그은 슬픔 같은, 아픔 같은, 주름 같은 그 과정이 고스란히 남겨진 몸,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힘을 나무에게서 읽은 것은 아닐까. (이동훈)
'감상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꼬 보러 갔다가 / 최재경 (0) | 2014.01.04 |
---|---|
물같이 바람같이 / 한인철 (0) | 2014.01.02 |
이사 / 고영 (0) | 2013.12.27 |
꽃마중 / 임채우 (0) | 2013.12.22 |
삼세기 / 이동순 (0) | 2013.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