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옆에서 / 강경우
가루눈 은빛으로 내리는데
아직도 울 밑에 소담한 국화는 노랑 빛, 그래도 조금은
추운가 보다 홍조 띤 얼굴 탱탱하다
배추 무 새파란 텃밭에 모닥불 활활!
타는 불꽃 속으로 달려드는 눈송이, 치익 칙, 없다 그들의
그 먼 여정도 한 순간이다
그렇게 사라지는 걸까, 저들처럼 우리도
무한히 사라져가는 것일까
처남과 매부는 앉아서 소주잔 기울인다 잉겅에 그을린 삼겹살
한 점 입속에서 우물거리는 매부(妹夫)의 눈빛 아득하다
“이젠 이빨도 흔들려서…….”
혼잣말처럼 읊조리며 소주잔 채워주는 그의 손 투박하다
아직도 계집애 손인 내가 부끄럽다 구운 고구마 속 같은 손으로
앉은 자리에서 뜯은 배춧잎 달콤하다
비누처럼 쥐면 불쑥,
어디론가 튕겨 달아나던 사람, 어쩌면
나는 그때, 그대의 철없는 그림자를 사랑했는지 모른다
참새 몇 마리 날아와, 던져준 고구마껍질 하나씩 물고
파르르 담을 넘는다 모닥불 활활!
내리던 눈 잠시 그친 사이
국화꽃잎에 녹은 물 방울방울, 공항대합실
어린 자식 둘을 두고 돌아서던 그대의
아득한 눈물방울처럼
- 『잠시 앉았다 가는 길』, 다시올, 2013.
* 눈이 모닥불에 닿아 “먼 여정”의 끝을 이루는 풍경이 삼삼하다. 가루눈이 모닥불에 타들어가는 소리도 현실감 있게 들린다. 풍경 속에 앉아 있는 처남 매부지간은 서로 다른 손만큼이나 삶의 이력이 각각이겠지만 녹아서 사라지는 눈과 같이 쓸쓸해 보이는 건 매한가지다.
이런 느낌은 당장의 사라지는 것들에서 머지않은 미래의 자신 모습을 그려본 까닭도 있겠지만,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공항대합실, 어린 자식, 이별, 눈물로 그려지는 삶은 얼마나 무거운 건가.
그럼에도 추억할 것을 주는 삶은, 소주잔의 위로가 있는 삶은, 잉걸불 지펴 그늘을 말리기도 할 것이고 새로 “활활” 타오르기도 할 것임을 생각한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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