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 단양 신라 적성비 앞에서 / 맹문재
적성현 사람인 야이차의 전공(戰功)을 기리면서
충성하면 똑같이 대우하겠다고 고구려 사람들에게
진흥왕은 약속했다
자신의 약속이 진실한 것임을 보여주려고
말로 전하거나
종이에 쓰지 않고
돌에 새겼다
그 약속은 지켜졌을까?
약속은 절대적인 이데올로기이거나
개인적인 윤리가 아니기에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약속을 어긴 상대방에게
순교하듯 등을 돌렸다
조건으로부터 고립되는 패착을 둔 것이다
배신이 목적이 아닌 한
약속으로부터 전향할 수 있음을
천년이 지난 길 끝에서 깨닫는다
- 『사과를 내밀다』,실천문학사, 2012
* 미생지신(尾生之信)이란 말이 있다. 미생은 다리 밑에서 애인을 기다리기로 약속을 두고, 물이 불어나는 순간에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다가 그만 익사하고 말았다. 요즘도 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필요에 따라 미생의 고지식함을 비판하기도 하고 오히려 이를 높게 사기도 한다.
화자는 약속과 신의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했던 자신의 태도를 조금 누그릴 작정이다. 배신이 목적이 아닌 한”이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어도 상대의 선택과 결정을 인정해 줄 여유를 갖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해서 약속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닐 테다.
흔히, 약속이라는 말로 사람들은 서로를 묶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나 윤리에 충실한 약속일 가능성이 있다. 이데올로기가 강할수록 약속도 무겁다. 상대에게 그 약속을 강요하는 것으로 자신의 신념을 다질 수는 있어도 약속 자체는 신념의 옳고 그름이나 그 유효성과는 무관한 문제다. 오히려, 상대 역시 나름의 신념과 명분과 사정이 있는 줄 헤아리는 자세가 서로 간의 소통에 도움을 줄 것이다.
돌에 새긴 진흥왕의 약속은 전략적으로도 유효했고 또한 진심이기도 했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지켜지지 못했다. 시인의 입장은 이처럼 어쩔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닿아 있다. 물론, 약속을 어길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얼마큼 애를 썼는지가 그 사람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긴 하겠다.
시인은 미생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전의 시인이라면 다리 밑의 약속을 아예, 없었던 일로 넘겨 버리는 세태에 실망한 나머지, 차라리 비장하게 가라앉는 미생의 어리석음을 귀하게 보았을 수도 있겠다. 이제, 여유를 갖고, “약속으로부터의 전향”을 인정하려는 마음을 낸다고 하지만 그 경계가 고무줄처럼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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