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만년필 / 이시향

톰소여와허크 2014. 4. 18. 22:32

만년필 / 이시향

 

너만을 고집하고

너만을 사랑하고

너만을 믿었어도

 

꼭 필요할 땐 나오지 않는

너와 닮았구나

 

- 시화집『마주보기』, 창연출판사, 2014.

 

*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글을 쓸 때다. 학생 한 명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면서 막 답이 나오려고 하는데, 샤프심이 나오지 않을 때”라고 적었던 기억이 있다. 반은 농담조로 읽히는 이 슬픔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건 아니었을까.

  <만년필>도 그렇다. “너만을” “고집하고/ 사랑하고/ 믿었어도” 너는 내 맘 같지 않아 내 사랑과 내 필요에 응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거다. “꼭 필요할 땐 나오지 않는/ 너”가 야속하겠지만 너의 마음과 너의 형편과 너의 한계를 살피지 않은 이쪽의 불찰에도 생각이 미쳐야 할 줄 안다.

  ‘만년필’이란 이름도, 지나친 기대에 말미암은 지독한 과장이다. 대략 ‘삼년필’ 정도로 불러준다면 서운한 일이 줄어들지 모른다.(이동훈)

'감상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할매 걱정 / 김성훈  (0) 2014.04.22
호수 / 문병란  (0) 2014.04.20
약속 / 맹문재  (0) 2014.04.15
나폴리 소녀 / 정채균  (0) 2014.04.11
1950년대 풍으로 / 김석규  (0) 2014.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