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구 달성공원, 회화나무 아래서
회화나무 아래서 /이동훈
大邱는 공자 이름 丘를 피해 邱가 되었다.
그 구릉 중심에 수백 수령의 공자수* 있다.
코끼리, 호랑이, 곰이
철장 속에서 하품하는 오후
까치발 들던 아이마저 칭얼대다 떠나면
진즉부터 공자수 그늘로 점점이 물러앉은 노인들
앙다문 입매로 좀쳇일엔 꿈쩍도 않는다.
부모 찾는 아이의 생울음에 잠깐 술렁일 뿐
생의 가장자리로 들고 나는 길은
온종일 바삭하기만 하다.
나무꼭대기 위로 한 떼의 비둘기 선회할 때면
울안의 네발짐승은 하나같이
내리 꺾인 가장자리 길로만 오간다.
닿을 수 없는 저쪽 너머로 몸의 중심을 옮기는 대신
푹 꺼진 바닥만큼이나 아슬한
미끄러지거나 헛디디고 싶은 유혹으로
혓바닥을 연하여 날름대는 것이다.
모든 것의 경계를 지우는 해질녘
약술 받은 것처럼 빨그레 물든 세상
노인을 편안하게 하는 게 꿈이라는 공자 말씀을
잠시 내려놓으려는지 공자수는
펴 놓은 그늘을 한 자락씩 거두어들인다.
불그죽죽한 등을 보이며 일어서는 노인들
경계 저편 어둠으로 유령처럼 하나 둘 사라지는
大邱는 조용하다
공자 이름은 섬겨도 공자 포부는 아득한지
젊은이는 서울로 빠져나가고
몸 댈 구릉 없는 大邱는 점점,
노인들의 구렁이다.
*공자수: 회화나무의 별칭, 대구 달성공원 소재.
'<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씨 뿌리다 (0) | 2014.05.24 |
---|---|
그리운 소월 (0) | 2014.05.09 |
돌할매 (0) | 2014.04.23 |
세한도 그리는 시간 (0) | 2014.03.18 |
반곡지에서 (0) | 2013.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