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택, <여인>
그리운 소월 / 이동훈
먼 친척 누나가
발톱에 매니큐어 바르며 밀쳐버린
야릇한 향 풍기는 손바닥만 한 시집을
김소월 지나 칼 부세까지 킁킁대며 읽었다.
예전에 미처 몰랐다는 식으로
지금의 통점만 후벼 파는 소월은
저 산 너머 좀 더 멀리 행복이 있다는
부세를 읽지 못했나 보다.
그리워하다가 아파하다가
요절해버린 시는 골수 깊이 박혀
집 나간 어머니의 흔적처럼
어둠 속을 오래 떠다녔으니
만약 그때 소월을 건너뛰어
부세만 읽었다면 생이 가벼워졌을까.
행복은 이다음에 있는 거라고
편하게 주워섬겨 삶이 달라질까마는
얼음장 지치다 돌아온 날
시집 한쪽에 그리운 건
뽀송한 양말일 뿐이라고 적었듯이
산다는 건 그리운 것의 목록을 쌓아가며
이전의 그리운 것을 잊는 것일까.
으스름한 꿈길로 오던
희미한 사랑마저 희미해질 때
먼 친척 누나가
집을 나갔다는 소문이 들린다.
'<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를 위한 변명 (0) | 2014.06.22 |
---|---|
씨 뿌리다 (0) | 2014.05.24 |
회화나무 아래서 (0) | 2014.04.24 |
돌할매 (0) | 2014.04.23 |
세한도 그리는 시간 (0) | 2014.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