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돈사지에서 2014.10
장지현, 잊혀진 가람 탐험, 여시아문, 2005.
근래에 원주 3대 폐사지를 답사하게 된 것은 시 한 편과 책 한 권에 이끌려서다. “폐사지를 찾아나서는 길은 숨은 그림 찾기”(「느티나무의 몸 속에는 」중에서)라고 했던 조용미 시인의 시에다 장지현 시인의 폐사지 순례기를 길잡이 삼아 눈요기를 제대로 하고 온 셈이다.
흥법사지, 법천사지, 거돈사지는 귀부와 이수를 갖춘 부도비를 다 갖고 있었는데, 그 모양새와 무늬가 달라서 보는 즐거움이 컸다. 법천사지 귀부가 구름무늬를 깔고 임금 王자를 새기고 있는 반면에 거돈사지 귀부는 연꽃 문양과 卍자 무늬를 갖고 있는데 그 미묘한 차이가 뜻하는 게 뭔지 제 마음대로 상상해 보게 되는 것이다.
“거돈사지에 닿으면 언제나 변함없이 반겨주는 수령 천 년의 느티나무가 있다. 석축과 함께 늙은 몸을 뒤틀며 절터를 떠받친 거돈사지의 늠름한 수호신이다. 그러고 보면 여주 고달사지에도, 고개 넘어 법천사지에도 우람한 느티나무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세월을 거스르는 데는 느티나무만한 것이 있을까?”라는 대목을 읽으며 조용미 시인과 장지현 시인이 같은 나무를 오래 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절보다 오래 가는 폐사지의 고목은 절과 부도, 탑, 당간지주의 운명뿐만 아니라 윤회하는 무수한 생명들의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런 나무 앞에서 경건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눈앞의 풍경에 홀려 영암사지 금당 터에서 한참 앉았다가 일어섰던 것처럼 거돈사지 풀밭에서도 좀처럼 발을 떼지 못했다. 느티나무와 삼층석탑과 불대좌와 이를 둘러싼 산 그리메까지 웬만한 공간 조형 그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폐사지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다음에는 “인간과 천상사람들이 함께 만든 오층석탑”이 있다는 경주 장항리 절터로 가볼까 궁리 중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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