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엄 / 성명진
죽은 잎들, 짚들
똥오줌 범벅되어 푹 썩었다
쇠스랑으로 찍어 내면
뭉게뭉게 오르는 열기, 퍼지는 냄새
지난 추운 날에도 삶은
이 더러움 속에서 따뜻하였다
삶은 다들 침 뱉은 이 속에서 배불렀다
아무도 몰랐던 썩음의 비밀, 희망
가만 보면 두엄 속에선
사라져간 좋은 사람들이 썩고 있고
고난에 바쳤던 눈물과 땀이 썩고 있다
한 짐 지고 일어서니
등에 장군 태운 듯 든든하구나
들로 가자
이 생생한 힘을 기다리고 있을 흙
흙에 안겨 시퍼렇게 살고 싶을
깊이 웅크려 있는 씨앗들
꿈틀꿈틀거릴 작은 뿌리들이여
이제 뿌리들에게로 가자
- 『그 순간』, 문학들, 2014.
* 아들 이름을 ‘두엄’이라고 지은 분의 이야기를 흘려들은 적이 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귀한 애 이름에 똥오줌이 뭐냐고 혀를 찰 만하지만 사회에 밑거름 되라는 뜻을 웃을 사람은 없을 줄 안다.
시인은 “삶은/ 이 더러움 속에서 따뜻하였다”며 두엄을 거들고 나선다. 아예 “썩음의 비밀”을 “희망”으로 읽기도 한다. 썩지 않는 것이 양산되어 에너지로 재순환되지 못하고 쓰레기 더미로 변해가는 것을 ‘희망 없음’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나 시인은 아직은 희망을 말하고 싶어 한다.
두엄에게 가장 희망적인 일은 씨앗과 뿌리에게 가는 것이다. 자신이 여기서 비롯하였고 또한 성장했으며 이제 다시 거름이 되어 생명을 도우려고 하는 것이니 두엄의 일생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푹 썩는 기똥찬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제 시골길을 가며 코를 막는 실례를 절대 범하지 말아야겠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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